아버지에 대한 추억
아버지에 대한 추억 / 석현수
틀니〔義齒〕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한 달간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허약해진 아버지를 휠체어로 모시고
이 검사실 저 검사실로 다니면서 아버지 진료를 도와 드렸다.
그런데, 어느 검사실에서는 모든 장식품을 다 풀고,
심지어는 아버지 입속의 틀니조차 빼라고 했다.
무척 고통이 따르는 검사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던 같았다.
난생 처음 틀니를 보았다.
건강해 보였던 아버지의 얼굴이 갑자기 합죽하게 무너지시더니,
무언가 한 움큼을 나에게 쥐어 주시는 것이었다.
틀니였다.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아버지의 용안을 볼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분의 얼굴로 부터 자식이 얼굴을 돌리다니,
이럴 수가 있을까? 아버지께서 얼마나 실망을 하셨을까?
당신의 입에서 나온 치아를 자식이 더럽다 하다니.
어릴 적 그분의 입으로 씹어 입에 넣어준 밥을
먹고 자랐을 터인데도 말이다.
지금 돌아 가신지도 15년이 넘었건만
그때 병원에서 있었던 못난 행동을 아직도 뉘우치고 있다.
아마도 천국에서 다시 아버지를 만나 뵈면
제일 먼저 이 일 부터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진짓상
아버지 진짓상에는 언제나 생선이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되면,
진지가 따습지 못하다고 하며
할머니와 아버지는 별도의 상을 차려 드렸다.
때론 온 가족이 고깃국이나 생선찌개를
다 같이 먹을 때도 있긴 했지만, 그다지 흔치 않았다.
어른들의 상위에 한번이라도 더 차려 놓기 위해
아끼고 아꼈기 때문에,
더러더러 우리들 밥상과는 사뭇 달랐다.
아무리 눈길을 피하려 해도 더욱 눈이 머무는 것은
아버지 상위에 올려 진 갈치나 간 고등어 구이였었다.
아버지는 맛있는 생선을 자주 남기셨고,
우리는 할머니와 아버지께서 자리를 뜨시면
아버지 상으로 우르르 몰려갔고,
생선토막 쟁탈전을 벌렸다.
지금 생각하니 왜 자주 아버지께서 생선을 남기고
일찍 자리를 뜨셨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아마도 많이 목이 잠기셨을 것이다.
아버지 밥상, 아주 먼 옛날 옛날이야기가 아닌
엊그제 같은 우리 집 식사 풍경이었다.
오십견(五十堅)
아버지께서 부산하게 아침 운동을 하는 날은
우리들은 아침잠을 빼앗기었다.
운동기구란 있을 수도 없는 시골이니
손발을 흔들고 고개를 젖히시며,
깊은 숨 들이고 내쉬던 모습은 체계적이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괜찮아 보인 국민 보건체조 모조품(模造品) 이었다.
소란스럽지만 않으시면?
아버지는 이른 아침 일어 나셔서 왜 잠도 못 자게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하실까?
아버지운동시간은 그렇게 환영을 받지 못했다.
우리들이 생각하기엔 운동 목적이
자녀들에게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조를 하시기 위함 같기도 하고,
아니면 늦잠을 못 자게
우리를 깨우실 목적일 거라고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이란
본인이 설정해 놓은 자명종 소리에도 일어나기 싫어서
몇 번이나 누었다 다시 일어나는데,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아침 시위가 반가울리 있었으랴.
아버지는 학교의 선도(善導)선생님 보다 더 노골적이고도
강제적이신 분이셨다.
세월이 가서 그 때 아버지를 회상해 보니
우리가 아버지를 너무나 몰랐구나 생각이 들었다.
오십견(五十堅)을 경험하는 동안
나는 아버지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았다.
아침잠을 설칠 만큼의 어깨 쑤심,
그리고 고문 같은 뻐근함,
누가 좀 주물러 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벌떡 일어나 어깨를 으쓱 으쓱 올리면서,
팔은 폈다 또 오므리며 마치도 갓 입학한
어린 유치원생 같은 율동으로
가족들의 잠을 훼방치고 있었다.
마치도 그때의 아버지의 모조품 국민 보건체조처럼.
새벽같이 일어나 좁은 아파트 공간을
두 손 내어 휘 저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버지가 들으셨던 식구의 원성을 내가 듣는다.
항상 철인처럼 느껴졌던 아버지 이셨지만
그때 아버지인들 오십견이 없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