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단풍 / 석현수
친구가 이미지 파일 몇 개를 보내왔다
도봉산에서 내려다 본 단풍사진이었다.
붉게 물든 산야는 너무나 화려해
큰 강(大河)을 이루어 고을고을로 타 내려가고 있었다.
시작도 끝도 없이 불이 붙어 있는 모습
거기에는 계절이 주는 애잔함도 마음 저밈도 없고
오직 환희와 기쁨의 합창이 나오고 있었다.
겨울나기의 전주곡으로 가을 단풍이 아니라
계절의 대단원(大團圓), 대자연의 클라이맥스로
환호성을 울리고 있었다.
여름날 건장한 나무들의 시위(示威)가 끝나면
낙엽들의 만장(滿場)한 박수(拍手)갈채를 받으며
가을은 우리에게 성큼성큼 행진해 오는 것이다.
나는 불현듯 일어나 공원으로 달려 나갔다.
내 가까이에 온 계절을 확인 하고 싶어진 것이다.
매일 같이 아침 조깅을 하는 곳이건만
눈에 띄지 않았던 새삼스런 공원 모습에 스스로 놀랐다.
어찌하여 계절이 이토록 타 들어 갈 때 까지 나는 무심 하였던가?
관심이 없으면 살펴지지 않는 것들이 어디 계절뿐이랴.
친구가 보내온 사진 이상으로
공원도 붉은 물이 진하게 들여 있었다.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한 단풍은 한층 질감(texture)이 있어 보였다.
봄꽃이 화려하나 꽃 핀 시기는 너무 짧으며,
꽃피우는 나무도 그 수가 극히 한정적이다.
그러나 가을 나무들은 모두가 꽃이 되어,
꽃보다 더 화려한 몸짓으로 한판 드라마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포도(鋪道)에 까지 달려 나와
관객과 호흡을 같이 하는 낙엽은 가을의 의도(意圖)된 연출처럼
모두가 한꺼번에 주연(主演)이기도 하다.
가을 운동회의 아이들처럼 우르르 몰리고 쏠리는
단풍들의 특이한 정취(情趣)
나는 더 이상 상념(想念)의 가을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쓸쓸함과 애잔함의 가을이 아니라
단풍의 화려함으로 인해
오히려 환희(歡喜)의 계절이라야 어울리지 않을까
바이올린의 흐느끼는 작은 선율이 아니라
개선(凱旋)하는 베토벤의 '애로이카' 영웅(英雄) 교향곡이
오히려 어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