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스케치
공원 스케치 / 석현수
1.
쉬어,
푹~ 쉬어
동자(瞳子)에 힘을 풀어야 해
뚫어보는 응시(凝視) 보다는
멍해 보여도 좋으니 관조(觀照)라야 해
그래야 솟아날 구멍이 보이는 거야
신발 갈아 신어,
뻔지레 칠피 외장(外裝)보다
운동화가 부드러워 보여
그래서 마음에 들면
누구라도 따라 나서 보는 거야
죽이 맞으면 대화에 끼어드는 거야
물 빠지고
힘 빠지면 아무도 다가오지 않아
내가 다가가는 거야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신기 하지도 않을 일상의 대화가
친숙해 지기 시작할 때
우린 보통 사람이 되는 거야
외롭지 않게 되는 거야
그년, 저년, 별놈, 도둑놈,
천연덕스레 말참견 될 때 까지
같이 묻어 다녀야 하는 거야
힘 풀어
한두 곳이 아니야,
목에도 어깨도
힘주어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나 홀로 학(鶴)이 되어 벤치를 지키지 말고
구르는 거야 추락하는 거야
내 상처를 먼저 보여야
그제야 모두가 나를 반기는 거야
2.
떨긴?
누가 떨어?
흔들며 전진하는 거야
카타필러(caterpillar)처럼 눕고 일어서며
오직 앞으로 나갈 뿐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번갈아 선도(先導) 하는 걸음마 부대
세월에 앞에 쓰러져 버린
옛 장사(壯士)들
가자, 허어, 얼른 가제 두
평생을 행군(行軍)으로 몰아쳤을 텐데
정(情) 없긴 영감쟁이 매 한가지
한 뼘 공원길
또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대단 하십니다”
“많이 나아 지셨네요.”
공연히 허튼소리 인줄 알면서도
그 인사가 고맙고, 반갑고, 살갑고
나래 꺾인 새들은 모두 공원에 모여
푸드득 푸드득
날개 짓을 시도 한다
한 차례 두 차례 몸을 던져가며
자리 이동 연습이다
화려한 비상(飛翔)은 꿈꾸지 않더라도
발 한번
자유롭게 떼놓고 싶다
3.
미쳤군 그래, 안 미쳤으면
꼭두새벽 여길 왜 나오나
맨 정신에 살아가기 힘든 세상
어둠이라도 숨어 타고
찬 이슬 맞아가며 미친 척 해 보는 것이겠지
운동 광(狂) 꾼들
새벽 공원은 모두 제 정신이 아니다
손만 번쩍 번쩍 드는 사람
출렁출렁 노 젓는 사람
가로질러 벤치에 누어 실룩 실룩 공염불 하는 사람
천태만상 맛 간 사람들의 모습이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비로자나불(毘盧慈那佛)
간 듯 만 듯 웃는 이도 있고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일찍 공원 숲속으로 흘러 들어온 이들이다
이곳저곳에 존재를 들어 내 보이는
새벽 공원 손님들
날이 밝으면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4.
우리는 새의 죽음을 보지 못한다.
숲에서도 가지에서도
그렇다면
새에게는 가야할 세월이 없는 것일까?
새는 노래할 뿐이다
새는 슬픔도 노래로 하는 걸까?
공원을 나〔飛〕는 새에게 묻노니
불사조가 아니라면
너는 늘그막 어디로 증발 하는 가?
흔적 없이 떨어져
별 똥 별로 숲속에 묻혀 지는 것일까?
바람에 실려 가는 것일까?
그래서 무리지어 배회하는 걸까?
보이는 건 날〔飛〕고 있는 새들 뿐인가?
숲을 가르는 새여, 하늘을 솟구치는 새여
그대의 그림자가 궁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