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지출
과잉 지출 / 석현수
지난 여름 여행길에
우연히 말동무를 만나 너무나 신나게 떠들었다.
그런 다음날 그 후유증이 밀려왔다.
마치도 머릿속을 남에게 전부 들켜 버린 듯,
나는 안절부절 해야만 했다.
노년의 삶을 사는 지혜 중에
다음 하나를 깜빡 잊어 버렸던 것이다.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많이 하라, 장광설(長廣舌)과
훈수(訓手)는 모임의 분위기를 망치고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말 대신 박수를 많이 쳐 주는 것이 환영 받는 비결이다.”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좋을 경우가 있다.
목적이 있고 의도된 때 이어야 한다.
대게 모임에는 서먹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분위기 메이커로 시끌벅적한 사람들이 있다.
주로 좌중을 즐겁게 하기위해 지혜를 동반한
유머와 위트가 이런 것이지 않겠는가?
분위기를 어우리기 위해 본인의 인격과는 상관없이
싱거워 지기도 하고,
일부러 찔뚝 없는 사람이 되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화가 진부(陳腐)해 질 때가 있다.
진부함이란 오래되고 케케묵은 것이라기보다는
신문 한 장 만 들추어도, 저녁 뉴스 해설 한번만 들어도
다 알법한 그런 알량한 것들이 아닐까?
괜스레 혼자 나라 걱정 다 하기도 하고,
열을 올려가며 상대방이 장단(長短) 맞춰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대화가 이런 유(類)이리라.
특정 분야에 전문가이어서 대단한 논리를 편다면야 몰라도,
잘난 체 하는 모습은
텅 빈 머리를 남에게 열어놓고 있는 것 같아
상대방이 볼 때는 빈(貧)해 보이기 십상이다.
그날 밤,
나의 기(氣)는 모두 빠져 나가 버렸다.
밤이 이슥토록 정치 이야기를 떠벌렸던 것이다.
그야 말로 허공에 구름 잡는 이야기를 ……
들어 온 것 보다는 나간 것이 훨씬 많은
과잉 지출이 된 바보의 날이 되었다.
돌아와 자리에 누워
문득 명(明)나라 문인(文人)
진계유(陳繼逾)의 안득장자언(安得長者言)을 생각했다.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일을 돌아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