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돼지(2007)

나의 길

온달 (Full Moon) 2015. 4. 12. 11:03

나의 길 / 석현수 

 

 

젊은 날, 삶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죽음은 항상 가까이서 손짓하였다

살벌한 생존경쟁만이 기다릴 때

도무지 헤쳐 날 것 같지도 않아

죽고 싶다는 말이 버릇처럼 쉬이 나왔다

철들자

새색시 맞고, 아이도 셋이나 낳았다.

가장(家長)이 되어 무거운 짐을 스스로 졌다.

죽을힘을 다해 달려들어도 부대끼는 판

숱한 인연이 날 줄과 씨줄로 엮어 질수록

삶은 질기고, 모진 것 이었다

죽을 힘 있으면 그 힘으로 충분히 살수 있다는 걸 알았다.

숨 고를 겨를도 없이 허겁지급 달려 중년(中年)을 뛰어 넘겼다

사(死)의 찬미(讚美) 노래는 허사(虛辭) 였다

역류를 거슬러 오르는 것이

보람이라고 생각 될 때

산다는 것의 거룩함을 알았고

얼굴에 비지땀을 흘려야 양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건 아담이 받을 벌(罰)이 아니라

신(神)이 내게 내린 축복 이었다

건강을 살피기 시작할 즈음

인생갑년(甲年)을 턱걸이 했다

세 아이 모두 제짝 찾아 떠났다

답안지를 제출한 아이처럼

홀가분한 마음 일 때

두려움의 허상(虛像)은 사라지고

모차르트의 위령곡(Requiem)이 오히려 편안해 졌다

지금 호명(呼名)해 주어도

하등 서운치 않는 석차(席次)려니 하고

이제는 웃으며 밖을 나선다.

노을 지듯 물 흐르듯 바람이 불 듯

스쳐온 모든 것 또한 죽어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