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사(豚舍)를 비웠습니다
돈사(豚舍)를 비웠습니다 / 석현수
돼지우리(豚舍)가 모두 비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초대가 되지 않아 섭섭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가족끼리만 치룬 예식이어서
하다 보니 그게 그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감출 것이 있어서도 아니고,
이웃들을 덜 사랑해서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서도 아니고,
별난 인생을 살기 위해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먹은 것을
하다 보니 그렇게 치렀을 뿐입니다.
이왕 내친김에
한꺼번에 모든 욕을 먹기로 하지요.
첫째 아이가 세 해 전,
둘째 아이는 두 해 전,
그리고 막내가 지난해 정월, 해 마다 한 명씩 하여
이제 돼지우리(豚舍)를 모두 비웠습니다.
모두 가족끼리만 치렀습니다.
식(式)이 아무렴 이면 어떻겠습니까?
결혼하는 당사자들 간의 마음들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셋 다 모두 잘 살기를 비는 마음이야
저 또한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있겠습니까.
이웃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태산 같았으나
그럴 수도 있으려니,
그냥 그렇게 보아 넘기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번거로울 이웃을 생각한 작은 배려쯤으로 생각하시와
섭섭함은 거두어 주시길, 바라오며
모두를 사랑하는 맘은 늘 상 변함이 없습니다.
####
예식장을 가야하니 벌써 주말인가 보다?
이 말은 이미 고전(古典)이다.
이제 결혼식은 주말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일 일과 후에도 하고 있어 주중(週中)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년 중 무휴로 펼치는 청첩공세,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는 뜻을 넘어서
공공연히 띄우는 고지서도 되기도 하고
특히 봄가을에는 가랑잎 쌓이듯 날아와
제대로 사람 행세(行勢)하고 사려는 이에게는
여간 번거로움이 아니다.
자기 자식을 낮추어 돈아(豚兒) 라고 한다.
돈아(豚兒)는 돼지 새끼라는 뜻이다.
물론 귀여워서 부르는 소리이기도 하다.
봄․가을로 이집 저집 비워 내는 돼지우리(豚舍)
청소(?) 공해(公害)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먼저 시간적인 공해다.
결혼식 참석 때문에 교회가기도 어려워 졌다.
종교행사 보다 더 우선적으로 챙겨야 하는 것이
결혼식 행차(行次)이다.
부처님이야 한번쯤 안 챙겨 드려도, 고얀 놈 하시지 않겠지만,
하느님이야 한주일 빠지면 잘못했다고
다음 주에 고해성사(告解聖事)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놈의 청첩은 집안 대사(大事)라 하여
이럴 때 한번 결(缺)하고 나면
두고두고 마음이 서로 소원(疎遠)해 지기 십상이어서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주말은 보장된 사생활(私生活)이 아니라
남을 위해 내어 놓은 공(公)생활이다.
축의금 부담도 적지는 않다.
요즈음 결혼식에 음식이며 술을 직접 준비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전문 식당에서 대접을 하고 만다.
이런 세태에 편리하게 가져가는 것이 축의금이고,
결국 자기 먹을 것 가지고 가서 먹고 오는 모습이니
혼주에게도 별로 도움이 없으면서도,
그 빈도(頻度)로 보면 주위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경제적 부담은 가벼운 것은 아니다.
그 번거로움을 모두가 개탄하고 있지만
자기 앞에 일이 닥치면, 숙명처럼 어쩔 수 없이
관행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동안 쌓아온(?)
기득권(旣得權) 포기가 어려운 것이다.
청첩장은 분명 자리를 빛내주는 잔치의 초대이다.
초대는 선별이 되어야지 분별없이 모두 끌어 모우면
세몰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초대는 오히려 소집(召集)이다.
아이들을 시켜 일제히 날리는 초대,
각종 모임, 회(會), 계(契)등
심지어 오다가다 걸친 인연들에게 까지 청첩장을 보낸다.
동창회 명부, 전역자(轉役者)명부, 사원 주소록,
신자주소록 등 평소의 친분에 무관하게
광고 전단지 보내듯 일제히 살포하는 이도 있다.
받아 보는 사람도 때로는 누가 보낸 청첩인지
임자를 찾지 못해 휴지통에 바로 들어가는 수도 있다.
나는 돈사(豚舍)를 비운 후
어떻게 이를 알려야 할까를 두고 지금도 고민 중에 있다.
혹시나 만에 하나 잘난 체 해 보이는 구석이라도 있어
혼례를 준비하는 지인(知人)들에게
누(累)가 되지 않을 까 생각되기도 하고.
아직 사회는 이런 이야기가 통할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괜히 미움 사고 싶지 않다는
솔직한 마음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지금의 번거로운 청첩행태는 언젠가는 자연스런
묘책(妙策)이 나와야 되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낭비와 불비례(不備禮)가 넘쳐 이웃을 힘들게 하는
결혼 풍속도에
마치도 네거리 교통신호등을 매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