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온달(2008)

마지막 신발

온달 (Full Moon) 2015. 4. 13. 15:05

마지막 신발

 

                                     석현수 

 

 

 

공원 이곳저곳에서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열심히 걸음마 연습을 하고 있다.

가만히 보니 이 분들은 한 결 같이 좋은 신발을 신고 있다.

성할 때는 몰랐는데 몸이 불편하고 보니 걸어 다니는 것도

하나의 축복이더라는 생각이 들어서

발에다 특별히 값진 대접을 해 주는 것이리라.

아니면

내가 걸어 다닐 날이 얼마나 될 까?

걸어 갈 길이 얼마나 멀까?

운동화가 다 닳아도 좋으니 제대로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서 그런 마음의 표현을 담아

좋은 신발을 신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마다, 활동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신발 한 켤레로 보통 3년을 지낸다.

그렇게 오래 신을 수 있나 생각하겠지만,

이보다 훨씬 더 오래 신고 다니는 사람이 더 많다.

길게는 5년이며 노인들일 경우 10년 일수도 있지 않을까?

아마도 이 한 켤레가

본인의 마지막 발 치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깟 신발 한 켤레가 무슨 큰 사치가 되랴.

요즘 젊은이들은 차를 신발에 많이 비유한다.

그래서 발도 없이 어떻게 가느냐고 묻는 다면

얼른 차편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으로 알아듣는다.

동네 주차장에 누가 벗어놓은 신발인지 몰라도

항상 비까번쩍하게 광택을 유지하면서

벗어놓은 신발(차) 하나가 있다.

우연히 마주치고 보니 이웃 노인네의 승용차다.

이 승용차는 노인이 제일 아끼는 소중한 노리개이기도 하고,

때론 희망의 적토마가 되기도 하여

이 노인은 차를 닦으며 마냥 달리는 꿈을 꾼다.

나는 차를 오래 타는 축에 든다.

지금 것은 구입한지 벌써 10년이 되었으니

곧 차를 바꿀 때가 되었다.

이번에는 어떤 차를 사야하나?

이제는 좀 안전성이 있고 제반 장비가 잘 갖추어진 것을

구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후진 할 때는 고개가 잘 돌아가지 않을 테니

뒤쪽 상황을 쉽게 볼 수 있어야 할 것이고,

길눈이 점점 어두워 질 테니 항법장비는 기본이고,

위급상황에 급히 대처하는 능력도 줄어들 테니

브레이크 시스템도 자동화 된 것이라야 할 것이다.

이것저것 사양을 주워 모으다 보니

차가 점점 고급스럽고 가격이 높아져 버린다.

이제 몇 번 더 차를 살 수 있을까?

지금 차량을 구입하면 향후 십년은 더 타야 할 터인데

이런, 이번이 마지막 차량 구입이지 않겠는가.

내 몸을 한번 대접해 주고 싶어진다.

아쉬운 마음이 강하게 작용하여

그만 분에 넘치는 호사(豪奢)를 기획하는 것이다.

공원에 노인네들이 신고 있는

값비싼 운동화 생각이 났다.

또 이웃 영감님의 적토마(赤兎馬) 모습도 떠오른다.

차나 닦으며 여생을 보내지나 않을 런지

모를 일이라 생각하니 새 차를 산다는 것은

마지막 신발을 신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냥 기분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