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
보신탕
석현수
날씨가 더워서인지 조금만 뛰어도 숨이 헉헉 거린다. 몸 컨디션으로 보아 이런 상태라면 가을철 마라톤 경기는 어려워진다. 사철탕 한 그릇 먹어야겠다고 스스로 진단과 처방을 내린다. 이른 저녁시간인데도 단골집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있다. 가게 간판만 오리 있다, 백숙 있다고 해 놓았지 손님들이 들고 앉은 것은 모두 사철탕 뚝배기들이다. 보신탕이라 해도 될 것을 주인이 사철탕으로 간판을 달았으니 손님들도 사철탕이라 모양을 바꿀 수밖에 없다. 속내다 보이는 것 같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사는 것이 어디 이런 것뿐이랴. 오늘은 보신탕 한 그릇을 먹었다는 기분만으로도 하루의 피로가 모두 풀린 듯 몸이 가쁜 하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우리는 상당한 불교 집안이었다. 믿음에 있어서 어느 집안이나 다를 바 없이 아버지 쪽은 좀 허술한 편이었고, 부처님께는 늘 어머니가 가까이 가 계셨다. 5일장이 서면 아버지께서 집을 나서기전 어머니로부터 철저하게 당부를 들어야 하는 것이 있었으니 절대로 밖에 나가 ‘개고기’ 사먹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요즘 집안에 이상한 일들이 생기는 것이 아버지의 개고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으름장까지 따른다. 이 것 드실 재미로 읍내 시장을 자원하는 아버지께 지켜지지도 않을 일을 억지 하시는 어머니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우습기만 하다. 저녁나절에는 닦달하는 어머니께 순순히 자백을 하고 그래도 최선을 다 했다고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더욱 우스웠다. 아버지는 보신탕 한 그릇 했노라 시며 그래도 어머니 생각이 나서 개울에서 양치하고 집에 들어 왔으니 너무 심하게 원망 말라는 변명이 계셨다.
올해 봄날에 성남에 있는 ‘모란’ 재래시장에 시장을 다녀왔다. 시장 한쪽에서는 강아지를 팔고 있었고 다른 편에는 개를 도살하고 있었다. 장터에는 보신탕을 끓이고 있는 곳이 여러 곳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장바닥에서라도 한 그릇 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개 잡는 모양을 옆에 두고 보신탕을 먹을 만큼 마음이 모질지를 못했다. 혹시나 시장에 아는 이라도 만나면 무슨 창피람 싶기도 하여 마음에도 없는 칼국수를 먹고 말았다.
개고기를 철저하게 못 먹게 단속 하던가 아니면 양성적으로 해서 위생관리를 해 주던가 둘 중에 하나는 택할 시기가 되었지 않나 싶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가운데 생겨날 문제가 두렵기만 하다.
먼저 개고기를 먹는 것은 야만스럽다. 따라서 이를 혐오 식품으로 규정하고 개고기 판매를 뿌리 뽑는다. 법으로 규제해서 건강이나 인간의 취향을 빌미로 반려동물을 잡아먹는 끔찍하고 잔인한 행동을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 어기는 음식점은 행정처분하여 다시는 이런 고약한 일에 발을 담그지 못하도록 철퇴를 내릴 것이며, 이를 먹으려 보신탕집을 찾는 사람들은 사회규범상 적응이 불가능한 사람들로 판단하여 아동 성 범죄자처럼 전자 팔찌를 채워 영원히 격리 시키면 어떨까?
한편 다른 생각은 개고기 먹는 것은 자유며 그것을 개인의 취향으로 보는 것이다. 하루속히 개고기 거래를 양성화하여 사각지대에 놓인 개고기 유통을 위생적으로 체계화 하여야 한다. 시장에서 음성적으로 개를 도살하고 위생검사과정이 없기 유통시키기 때문에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 추측컨대 힌두교가 쇠고기를 불허한다고 해서 인도 정부가 쇠고기 불법유통을 하거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회교국에서 돼지고기 유통과정을 숫제 없애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 많이 발전했는지 아니면 양 리웨이(Yang Liwei)의 인기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거기서도 최근 개고기가 논쟁이 발생했다하니 중국을 보는 시선이 새삼스럽다. 양 리웨이는 2003년 선조우 5호를 타고 지구궤도를 21시간 탐사했던 중국 최초의 우주인이다. 그는 자서전 『천국과 지구 사이의 아홉 단계』에서 우주인은 무엇을 먹는가라는 설명에서 우주인도 평범한 음식을 먹으며 그 중에는 삶은 생선이나 치킨, 혹은 개고기가 포함된다고 밝힌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 글에서 우리가 주시해 야할 것은 중국인들의 평범한 먹을거리가 개고기이며 중국 북쪽 지방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즐겨 먹어온 음식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동물 애호가들을 향해 우리가 먹는 개는 별도로 기른 식용 개이지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이 아니라는 식으로 설명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구차한 일들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남의나라 눈치를 보면서 그 즐겨 먹던 음식조차도 먹는다, 못 먹는다 하면서 세월을 보낼 것인가. 한때 미국에서 고속도로 속도제한이 55마일이었다. 그러나 그 속도를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몇 년 전 60마일로 법을 고쳤다 한다. 보신탕은 누가 뭐래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기를 쓰고 찾아나서는 여름철 보양 음식이다. 그렇다면 실속 없는 껍데기 문화인 칭송을 듣기 보다는 차라리 죄책감에 풀려나 탕 한 그릇을 놓고 스스로에게 솔직해 지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