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Full Moon) 2015. 4. 15. 08:30

멍석 타령  

 

석현수 

  

 

여름날 좁은 방에 대 가족이 둘러앉아 지내기는 여간 고역이 아니다. 이럴 때 편하게 사용하는 것이 시골 마당의 멍석이다. 좀 사정이 나은 집에서는 살평상을 쓰겠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주로 땅 바닥에다 멍석을 펴고 지냈다. 필요한 장소로 손쉽게 이동이 가능하니 이사 때면 멍석 생각이 간절해져서 드르륵 말아서 옮겨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사를 해야 할 형편에 놓였다. 늘 이게 마지막이다 하고 그때마다 위안을 가졌지만 이번엔 정말 마지막 이사가 필요하나 보다. 막내딸 내외는 맞벌이 부부다. 처음 혼담이 오갈 때부터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내심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손자가 태어나자 그 걱정이 현실화 되었다. 손자를 데려고 내려와 살아보라는 주위의 권고에 따라 아이와 대구에서 잠시 생활해 보았다. 아이도 봐주고 우리 내외의 생활 리듬도 죽이지 않겠다는 욕심이었지만 때 마다 어미를 찾는 어린 것 때문에 이건 어른이 할 짓이 아니다 싶어 마음을 돌려야 한다. 

 

이사는 당장 어려우니 우선 몸만 올라가 사위랑 같이 지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아동의 성격형성은 거의 유아시기에 결정되기에 떨어져 있는 것을 걱정했다던 막내 딸 내외가 무척 우리들의 결정을 반겼다. 아이도 활기를 찾았고 딸 내외 또한 서울 대구 간을 오가며 길가에 소모하던 에너지를 직장에 쏟아 놓을 수 있어 다행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출근하는 뒷모습을 보는 아침시간이 행복 하다.  

 

그러나 보따리 싸기가 겁이 난다고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테인가? 잠시라면 몰라도 적어도 손자가 유치원을 마칠 때 까지는 우리는 손자로 부터 졸업하여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집을 옮기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결국 올 것이 오는 것 같았다. 오래 동안 좁은 공간에 사위와 더불어 북적대는 것이 무리다 싶어 대구 집을 처분하고 서울 막내딸의 이웃으로 거처를 옮기자고 마음을 먹는다.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소름끼치는 이사를 한 번 더 치러야 한다. 옮겨 다닐 수밖에 없는 남편 직업 때문에 살아오면서 수십번 넘게 보따리를 쌌던터라 식구의 고민이 깊어진다. 묵은 살림살이가 눈에 어른어른 하여 엄두가 나지 않나 보다. 설상가상으로 지방에서 살던 아파트로는 처분해 본들 서울에 와서는 전세 값도 되지 않는다는데, 평수도 반으로 줄여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우리를 서글프게 만든다. 

 

둘둘 말아서 뒤란에 두다 필요하면 어느 곳이든 펴서 여름을 나던 멍석으로 지내던 때가 그립다. 멍석이나 펴고 살다가 손자 다 키우면 다시 드르륵 말아 고향으로 가져 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두 내외가 밤새 머리를 맞대도 뾰족한 수는 생기지 않는다. 멍석처럼 쉬운 방법이 없나하고 고민하고 있으니 계속 멍석 타령뿐이다. 

 

자식이 커서 출가를 하고, 이제는 손을 털었나 싶었을 때 다시금 손자의 손에 이끌려 제 자리로 되돌아온다. 또 다른 고생이 기다리고 있다. 태양의 주위를 도는 지구, 지구를 돌고 있는 달, 딸 삼대가 맞물려 세월이 흘러가는 듯하다. 손자는 제 어미에 매달리고, 애 엄마는 다시 늙어가는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한다. 또 이사를 해야 하다니, 나는 주방장의 밥주걱이 움직이는 별의 방향을 보고 길을 나설 동방박사 일뿐이며 둘둘 말아 올리는 멍석 같이 쉬운 이사 방법이나 꿈꾸는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