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Full Moon) 2015. 4. 15. 08:58

반지斑指 

 

석현수  

 

 

나는 빨간 루비가 박힌 금반지를 가지고 있다. 서 돈이나 되니 딴에 반지로써는 좀 크다는 부담도 있고, 특히나 한 가운데 박힌 루비 색깔이 토끼눈처럼 발갛게 휘둥그레져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선뜻 마음 내키는 내 물건이 아니다 싶다. 반지는 장롱 속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으며, 나 또한 언제 그를 불러낼지 모르고 살고 있다.

 

 

옛 유럽 문화권에서는 반지가 자신의 신분을 결정하는 표지가 되었다고 한다. 군인 아저씨들에게도 반지는 그들의 출신성분을 나타는 표식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푸른색 루비 반지는 학도군사훈련단R.O.T.C. 출신이고, 사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빨간 색깔 루비여서 상호간에는 통성명을 하지 않더라고 서로서로의 임관 과정을 짐작하게 해 준다. 그러나 반지는 어디 까지나 기호에 의한 일종의 장신구가 되어있기에 끼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일 뿐이어서 의무적으로 목에 걸고 다녀야 하는 이름, 군번, 형액 형이 찍힌 인식표認識票와는 역할이 전혀 다르다.  

 

푸르거나 붉거나 간에 루비의 색깔에 따라 양쪽 모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학군단 훈련을 마친 장교들로써는 힘든 대학 공부를 하면서도 군사훈련을 병행해온 부지런한 아저씨들로써의 자부심이 있다. 조직의 근간을 이루는 초급 간부 역할을 맡아 병역 의무와 사관으로써의 생활을 한다는 것에 긍지를 가지고 있어 그들은 푸른색이 좋단다. 반면 사관학교를 졸업한 아저씨들은 엄격한 정규 군사교육을 마쳤다는 것과 군 간부로써 장기간 군에 남아 나라의 장래를 짊어진다는 소명의식 때문에 그들은 붉은 색깔 루비에 애정을 듬뿍 가진다.  

 

양쪽 모두에게 통하는 공통적인 용어가 있다면 조국, 충성, 명예, 책임, 의무, 필승, 지, 덕, 용등 몇 가지 키워드이다. 이것은 학군, 사관 아니더라도 한국이나 미국이나 간에 군복 입는 사람이라면 어디서든 공통 언어가 된다. 목숨을 담보로 하고 살아가는 특수 집단에서야 그중 어느 것 하나라도 빠져도 될 법한 것이 있을까. 반지는 이런 덕목들을 외향적으로 나타내는 표상이며 무언의 자신감을 표출해 보이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 들이 낀 반지를 부럽게 올려다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소중한 반지도 가끔은 엉뚱한 곳으로 외출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냥 해 보는 소리지만 금 무게가 서 돈이나 되는 것도 이 엉뚱한 임무를 잘해내기 위한 방편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비상 상황 하에 전당포 신세를 지거나 미납 외상 술값으로 볼모 잡힐 경우라면 닷 돈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친구들의 말을 빌리면 끼고 다닌 기간 보다는 전당포에 들어가 있었던 기간이 더 길었다고 우스개 하는 사람도 있다. 다행이 나는 술을 먹지도 못하고 객기를 부릴 정도의 위인이 못 되어 재미난 곳으로 외출한번 시켜주지 못했으니 내 반지는 달랑 한 돈이었어도 충분했을 것 같기도 하다.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은 그 색깔에 맞갖은 생활을 해야 한다. 무엇이 무어답다는 말은 무척 어려운 말이긴 하지만 반지도 또한 반지가 어울리는 사람이 끼어야 한다. 세상에 명예를 지키고 산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반지를 끼고 다니지 않는다. 내가 반지를 장롱 속에 모셔두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나는 아직 반지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반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지는 장롱 속 깊은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장롱을 열면 부담스럽게도 붉은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반지가 가지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스스로의 행동거지가 세인의 모범이 되지 못해 그 큰 뜻의 의미를 선뜻 내 장신구로 치레 할 용기가 없다. 반지는 무작정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가 반듯해 보일 때가 언제이련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내가 생을 마감하는 날 까지도 그날은 오지 않을 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