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기쁨거리(2011)

어버이날에

온달 (Full Moon) 2015. 4. 15. 09:23

어버이날에  

 

석현수 

 

 

“기쁜 날 좋은 날

우리에게 부모님을 보내 주신 날

축하해요, 축하해요, 축하해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우리 세대는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시던 ‘어버이날 노래’는 많이 불렀으나 이 노래는 신식이다. 가사가 좀 단출해진 것을 보니 아마도 어린이 버전으로 새롭게 나온 것 같기도 하다. 코흘리개들에게는 아버지가 날 낳으시고 어머니가 날 기르시는 경위를 설명하기도 어렵고 태산 같은 은혜라면 태산도, 은혜도 전혀 못 알아들을 것이니 차라리 부모님을 보내 주신 날로 표현했나 보다. 아이 눈높이에 훨씬 가까워진 어버이날 노래다. 

 

올해는 특별한 감동이다. 유아원에 간 지 두 달 만에 어버이날을 맞아 손녀가 이 노래를 불렀다. 집에서 할머니랑 같이 지내다 처음으로 떨어져 단체생활을 했다는 것과 처음으로 선생님이란 분을 만나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이 대견스럽다. 때를 맞추어 어버이날에 그동안 배운 솜씨를 엄마 아빠에게 자랑해 보인 것도 큰 볼거리였다. 아이의 노래는 가사, 음정, 박자 모두 좋았고 율동도 섞었으니 나무랄 데가 없었다. 선생님들이 많이 애를 쓴 모양이다. 

 

부모님은 한참 오래 전, 내가 50세가 되던 해 모두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런 날이 오면 살아생전의 두 분 모습이 그립기만 하다. 여든 살의 노인이 예순의 아들을 보고 차 조심 하라고 단속하는 걸 보아도 부모 눈에는 자식은 영원히 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보면 비록 환갑은 넘었지만 나는 지금 양친 부모를 잃은 고아다. 

 

다행히 처가 쪽으로 장모님이 아직 계시어 여든에서 아흔을 향해 열심히 나아가고 계신다. 올해 어버이날은 딸 사위를 앞세우고 처가로 가족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마침 맞벌이 부부인 자식 내외가 징검다리 연휴를 잘 뛰어넘어 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대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장모님, 우리 부부, 딸 내외 그리고 손녀, 그러고 보니 딸 4대가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할머니란 호칭이 손녀에게 혼돈을 줄까 봐 장모님은 왕 할머니로 불렀더니 손녀는 쉽게 두 할머니를 구분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는 증조할머니 그럭저럭 서툴게 센 할머니가 안식구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 하지 않았던가. 아흔을 앞둔 노모가 예순을 넘은 사위를 위해 상차림을 서두르신다. 상 위에는 결혼 후 40년을 먹어 와도 질리지 않는 명태 무침과 가죽잎 나물이 올려진다. 겨울철에는 무말랭이 무침이 있지만, 오월이라 이번엔 빠지는 모양이다. 이것들은 어머니의 특기면서 아울러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이다. 장모님 손만 가면 무슨 음식이든 맛이 달라지는 것은 조미료 대신에 특별히 사위 사랑을 듬뿍듬뿍 넣으시기 때문이리라.  

 

이에 보답하는 사위의 배려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밥상을 물리면 처가 식구들 대열에서 얼른 빠져 대문 밖으로 나가 주는 일이다. 그래야 장모님과 아내의 푸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올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모녀간에 못 할 말이란 없을 것이다. 칭찬도 하고 험담도 하고 그 맛에 친정에 가는 건데. 그리고 어머님께 쌈짓돈을 넣어 드려도 사위보다야 딸이 더 마음 편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다.  

 

부산한 하루를 보냈지만, 마음은 허전하다. 장모님께서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실까, 마음이 아프다. 이 날이 아니어도 요즈음은 처가에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애쓰는 아내의 속은 나보다 더하겠지. 돌아오는 길에 뒷좌석에서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손에 든 카네이션 꽃보다 내 손녀를 더 반기시던 왕 할머니를 다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날엔 사진 한 장 찍어두는 건데…. 북새통 속에서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질 못했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