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과 조연이 바뀌다
주연과 조연이 바뀌다
석현수
잔디는 모진 식물이니 그냥 내버려 두어도 잘 살겠지 하고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그 속성이 이웃하는 작물을 못 자라게 할 정도로 강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요즈음 잔디는 생각보다 약해서 화초 같은 대접을 해주야 했다. 들꽃도 화분으로 옮겨 심으면 성치 못하고 송사리도 어항에 넣으면 수족관 열대어 못지않게 간수가 어렵다. 사람 손을 타서 성치 않은 것이 어찌 잔디뿐이겠는가.
지난여름 혹서기에 잔디는 저들의 본성도 잊은 채 게으른 주인을 목마르게 기다리다 기진하여 하얗게 말라 흉물스럽게 타들어가 버렸다. 뒤늦게 부산을 떨어가며 연일 물 호수를 입에 물려놓아도 회생 기미가 전혀 없었다. 죽은 것을 걷어내고 씨를 뿌리기로 했다. 이것저것 고르다 거름이 배합된 씨를 샀다. 특별한 지식이 없는 터라 심고 물만 주면 된다는 겉포장의 설명을 읽고 손쉬운 선택을 했다.
짚을 덮어주었다. 가을 햇볕이 따갑다 싶어 그늘을 만들어 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순전히 촌사람 기질에서 나온 순발력이었다. 짚이란 원래 허드레 것이어서 손쉽게 구할 줄 알았는데, 흔한 개의 뭐도 약하려면 없다더니 하늘의 별 따기가 짚 구하기만큼 어려웠을까. 금값을 주고 간신히 몇 단을 사는 행운을 가졌다.
일 모르면 공들이는 것밖에 없다. 아침저녁으로 물 호스를 잡고 늘어졌다. 파란 싹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나도 해냈다는 자신감에 마음이 서둘러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었다, 잔디는 보통 열흘 정도가 지나야 싹이 난다는데,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파란 싹을 틔워 올렸던 것이다. 과연 나는 잔디 재배의 귀재일까? 아니었다. 그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보리 싹이었다.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속담이 무색해져 버릴 지경이었으니 잔디를 심었건만 잔디는 보이지 않고 대신 보리 싹이 올라왔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컸다. 원인은 짚에 있었으니 돈 벌이에 눈이 어두웠던 상인이 이삭도 털지 않고 짚단을 시장에 내놓았던 것이다.
설령 귀하신 몸이라 할지라도 제 곳을 떠나 엉뚱한 곳에 있으면 대접을 받지 못한다. 보리밭에서는 보리가 주인이다. 보리밭에 잔디나 잡풀이 보이면 농부는 제초제除草劑를 뿌려 김을 맨다. 이와 반대로 잔디밭에 보리가 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는 보리가 되레 잡풀 대접을 받아야 한다. 보리에게 미안한 일일 테지만, 정도에 따라서는 제맥제除麥劑를 뿌려줘야 할 것이다. 세상에 그런 농약이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연과 조연의 혼선에서 온 낭패였다. 잔디밭에 보리라니 참 재미있는 만남이다. 보릿단에 햇빛 가리개 역할을 시켰더니 보리가 되레 제 자식들만 키워 올려 잔디밭을 망쳤다. 단풍놀이가 한창인 가을에 보리 파종이나 한 무식쟁이 정원사가 되지 않기 위해 재빨리 사태수습에 나섰다. 보리야 가라! 여긴 먹을거리 소출을 내려는 곳이 아니다. 멀리서 지켜본 이웃들은 저 사람이 왜 파란 싹을 갈아엎을까 하고 의아했을지 모르지만, 다행히 초록草綠은 동색이어서 나의 허물이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