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보다 카네기를
오리보다 카네기를
석현수
오리는 대단히 부지런한 동물이어서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자기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속에 잠긴 물갈퀴를 계속 움직여 주며, 쉴 때는 부지런히 날개 밑으로 부리를 문질러 날개에다 기름을 발라 주고 있다. 세상에 오리만큼 부지런한 동물이 또 있을까?
오리 같은 친구가 있다. 모두 복 많은 사람이라고 부러워하지만 정작 젊은 날 그는 아이스케키 통을 들고 거리를 헤매기도 하고 리어카를 끌고 시장판을 돌던 불운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부지런함으로 타고나지 못한 불운의 복을 제 손으로 만들어낸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물 위의 오리는 보기에는 한가하고 평화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부양(浮揚)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친구 또한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이 보여도 누구보다 분주하게 삶을 살아가기에 동갑내기인 나보다 훨씬 더 많은 흰 머리카락을 머리에 얹고 있다. 사장이 좋은 것으로 보여도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란다. 쉴 새 없이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부지런함 덕분에 오리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안전사고는 없듯이 친구 또한 하늘이 무너져도 감당해 낼 수 있는 탄탄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소문 나 있다.
오리는 날 장소에서는 날고, 걸을 장소에서는 걷고, 헤엄쳐서 건너야 할 곳에서는 수영한다. 일인삼역을 거뜬히 소화해 내니 육·해·공의 재능을 가지고 있기에 그야말로 세인이 닮아보고 싶어 하는 부러움의 동물이다. 서커스나 시장바닥에 가면 오리 같은 사람이 있으니 그가 곧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각설이다. 영어에서도 이런 사람을 one-man-band라고 부른다. 한동안 이런 유의 일인다역 맥가이버 형 재주꾼들을 무척 부러워했다. 오리는 다재다능의 표상이었다.
친구는 오리보다 재주가 더 많아 일인 10역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들처럼 교육을 받지도 못했지만, 그 대신 독학으로써 짬짬이 재능을 다듬어 영어, 경영, 회계, 글, 그림 등 어느 분야에서도 남들만큼은 아는 사람이 되어 자기 사업을 직접 챙겨가며 성공의 반열에 올랐다. 부지런하고 근면한 친구는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어 한 달에도 몇 번씩 방송을 타서 지금도 이름을 대면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나는 친구의 오리 같은 재주를 부러워하지만, 더 존경하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의 재주를 빌려내는 능력이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친구는 그동안 세인들로부터 받아오던 칭송 ‘부지런하다.’라는 이미지를 어느 날 갑자기 벗어던져 버렸다. 한 번 장점이 영원한 장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대부분의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남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이들의 한계란 곧 부지런함에서 기인한 잘못된 습관으로서 만사를 제 손으로 직접 챙겨야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 아니었던가?
친구는 남들과 달랐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던 각설이 때의 손맛에서 벗어나 유능한 전문가를 영입하는 관리자로 탈바꿈해 버린 것이다.
구멍가게를 할 때는 한 사람이 여러 역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골목 장사에서는 북 치고 장구 치는 재주를 피워야 수지가 맞다. 그러나 조금만 조직이 커져도 상황이 달라진다. 날고, 걷고, 수영하는 오리가 이제는 결코 반가운 존재가 될 수 없다. 회사에서 사장님이 가장 부지런하고, 아무도 우리 사장님 머리를 따라갈 수 없다며 혀를 내두르며 오버하는 직원들은 사장을 더욱 눈멀게 하고, 강건한 오리로 만들어 갈 뿐이다.
사장이 가장 똑똑하고 사장이 가장 부지런한 전형적인 작은 회사의 모습을 탈피했다. 땅에서는 타조처럼 뛰며 물에서는 상어처럼 기민하게 덮치며, 하늘에서는 독수리처럼 날쌔게 상대를 제압하는 무서운 회사가 되었다. 돈은 돈 전문가에게, 사람은 사람 전문가에게, 운송은 수송 전문가에게, 디자인은 미술 전공자에게 홍보는 홍보 전공자에게, 전산은 컴퓨터 전문가가 곧 사장의 눈과 귀다.
친구는 한국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빠르고, 높고, 그리고 가장 멀리 날아갈 수 있는 현대판 트랜스포머(Transformers)가 되어 자기 분야 무림의 고수로 홀로 우뚝 서 있다. 친구는 돈 잘 버는 사람으로서보다는 용병을 잘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다. 카네기 묘비명에는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들을 주위에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 여기에 잠들다."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친구가 카네기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