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기쁨거리(2011)

사랑은 기술인가?

온달 (Full Moon) 2015. 4. 15. 09:48

사랑은 기술인가?  

 

석현수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한자 문화권은 고유한 동양 문화가 있어 우리의 해우소解憂所나 측간廁間을 서양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듯이, 영어 문화권도 서양 문화를 모르면 우리가 그들의 의중을 헤아리기 어려워 자칫 원뜻에서 상당한 거리로 의미가 멀어질 수가 있다.  

 

동양의 손자병법을 서양에서는 『The Art of War』로 출판하고 있다. 기술技術이나 전략戰略의 측면에서 본다면 분명히 손자병법은 <전쟁의 기술(Technic of War)> 또는 <싸움의 전략(Strategy of War)>이 더 맞을 것 같은데 어찌 전쟁을 예술로 보고 “Art”라는 단어를 썼을까? 그래서 문득 “전쟁은 살아남은 자에게는 가장 훌륭한 입체 예술이다.”라는 말을 떠 올려 본다. 전쟁이 예술일 수가 있다면 그것은 가장 비극적인 예술일 것임이 틀림없다. 서양 사람이 전쟁에서 예술성을 찾는다면 그림같이 해치우고, 신사같이 멋있게 살아남고, 무희처럼 현란하게 싸우고자 하는 바람에서 손자병법을 “Art”로 표기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사랑에서도 기술이냐 예술이냐의 혼동이 있다. 대학 시절 많은 젊은이가 읽었던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사랑의 기술』이란 책이 생각난다. 책의 원 제목은 『The Art of Loving』였다. 번역자는 책 제목에서 “Art"를 번역함에 “예술”이라는 단어로 쓰지 않고 “기술”이라는 단어로 옮겨 『사랑의 기술』로 해 놓았다. 역자는 아마도 적지 않은 고민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랑을 예술이기보다는 오히려 관숙해야 할 고도의 기술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지만, 기술이란 낱말 때문에 원저자 프롬Fromm이 말하고자 한 부드러운 사랑이 그만 무뎌져 아기자기한 맛을 반감한다. 젊은 날 사랑에 한 번쯤 빠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인가? 사랑도 홍역 같아서 누구나 한 번쯤 앓아야 하는 청춘의 통과의례가 아니던가. 글쎄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라면 사랑이란 “예술”에 더 가까운 감성적이면서 아름다운 한 편의 드라마나 오페라 같은 것을 먼저 연상하지 않았겠는가.  

   

우리말에는 "예술"과 "기술"은 확연히 구분한다. 사전적 해석으로 미루어보면 "예술"이란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써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공간 예술, 시간 예술, 종합 예술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기술技術"이란 과학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여 자연의 사물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을 말하며 사물을 잘 다루는 방법이나 능력을 말한다. 이렇게 확연한 구분을 프롬Fromm의 “Art"에서는 “예술”과 “기술” 사이를 두고 헤매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영어 문화권에서는 "예술"과 "기술"을 어떻게 달리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Art"는 정원 예술(Art of gardening)/ 요리 예술( Art of cooking)/ 등등 전문 분야에 많이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Art"는 기술을 넘어 어떤 경지에 다다른 그런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단순한 기교나 기술과는 판이하다. 우리는 기술이란 말에 얼른 "Technique" 이란 말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들은 "Technique"이 가지는 기계적이고 딱딱한 느낌을 젖혀두고 대단한 기술은 예술로 한 단계 올려 잡아 “Art"로 표현하고 있다.  

   

『The Art of Loving』은 <사랑의 기술>인가? 아니면 <사랑의 예술>이 되어야 할까? 말할 것도 없이 사랑이란 "예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에 사는 한 교포는 대지진 재해를 당한 이재민을 돕기 위해 100억 원이란 큰돈을 기부금으로 쾌척하면서 의미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돈을 번다는 것은 기술이며, 잘 쓰는 것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돈에 대해 정의를 내리면서 ‘기술’과 ‘예술’을 확실히 구분해 주었다.  

   

아이가 선물한 향수 한 병을 5년이 지나도록 홀대를 하고 화장대에 방치한 적이 있다. 화장실을 ‘toilet'로만 알았지, 그 속에 화장품이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 못했기 때문이었다. 향수 병에 적혀있는 'toilette'란 단어를 보고서는 성급히 화장실에서나 쓰이는 방향제를 내게 사다준 것으로 생각하고 아이의 무지를 원망만 하고 지냈던 것이다.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친다고 해서 화장실이라 부른다는 것도 뒤늦게 안 일이다. 서양 문화에 어두운 나의 선입감이 먼저 작용해 버린 큰 실수였다. 

 

영어 문화권에서 들어온 “Art”를 두고서 이것이 “기술”이냐 “예술”이냐의 차이에서 혼란을 가져온다는 것은 당연할 것 같다. 뜻을 알기 위한 가장 큰 보조수단이 될 수 있는 그들의 문화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옳다.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전쟁도 예술이라고 보는 그들이 아무렴 이면 사랑을 기술로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 재고再考해 본다면 『The Art of Loving』에서의 “Art"의 의미는 『사랑의 예술』이라고 해 두는 것이 더 반듯한 접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