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기쁨거리(2011)

물은 흘러야 한다

온달 (Full Moon) 2015. 4. 15. 10:02

물은 흘러야 한다

 

석현수 

 

 

  

“물은 흘러야 한다. 흘러가는 물도 흐르지 못하게 막으려는 사람들이 어찌 제정신이랴. 그 많은 나랏돈을 물 막기나 하고, 그것 때문에 자연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몇 번의 보궐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말들이다. 표현대로 사정이 그러하다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얼른 뽑아서 나라 살림을 시키도록 해야 되지 않겠는가? 

 

나는 사회 문제에 좀 둔한 편이다. 워낙 문제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엉켜 있기 때문에 비전문가로서 이것저것 시시비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더욱이나 이제는 좀 쉬엄쉬엄 쉽게 보고 지날 나이가 되어서인지 열정도 부족하고 시간상으로도 한가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물 얘기가 나오면 눈이 떠지고 귀가 열린다. 나는 농촌 출신이다. 물 때문에 너무 고생을 많이 하고 자란 시골뜨기이니 이것에 관한 논쟁이라면 촌티를 좀 내보이고 싶다.  

 

농촌 사람들이 꿈꾸는 천국은 가뭄과 홍수가 없는 곳이다. 잘 보전해서 돌담길, 소달구지가 다니는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을 유지하도록 해 주는 것만이 농촌을 천국으로 만들어 주는 일이 아니다. 도시 사람들은 산업화의 덕을 입어 문화생활을 이야기하지만 농촌 사람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농민의 힘은 농사에서 나오며 농사만이 농민의 허기를 덜어내는 유일한 방책이다. 농사꾼의 기본은 농사이며 농사의 출발은 물에서 시작한다.  

 

자연은 환경운동가보다 농촌 사람들이 더 사랑한다. 농민은 자연에 뿌리를 두고 사는 사람들이기에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라도 올려야 하고, 홍수로 논밭이 수몰되면 살아남기 위해 제방을 높이 쌓아 올려야 하는 것도 농민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홍수와 가뭄의 악순환 고리가 농민을 평화롭지 못하게 하며, 그들이 꿈꾸는 천국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 환경운동가가 유지하려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농민들이 누려야 할 웰빙은 말은 비슷하나 뜻은 너무 멀다. 

 

그대로 두는 것이 보존이 아니다. 그대로 두면 없던 물이 저절로 흘러내리지 않는다. 오랫동안 흘러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많은 물이 한꺼번에 바다로 흘러가 버리지 않도록 비가 올 때 물을 가두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강을 보존하는 길이다. 나라의 지도급 인사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국어 시간 수준도 못되는 ‘흘러야 한다.’ ‘막아야 한다.’를 다르게 외치며 말꼬리 잡기 놀이를 하고 있다.  

 

농촌 환경을 훼손하면 농촌에 사는 사람이 제일 먼저 피해를 입는다. 자연을 훼손하여 농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면 사회운동가가 나설 일이 아니라 농민이 먼저 나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핑계는 농촌 사람을 위하고 생태계 보호를 위한다지만 실은 시골 분들을 빌미로 배운 사람들이 장난을 치고 있다. 처음에는 슬금슬금 하더니 좀 먹혀 들어간다 싶으니 세상을 통째로 흔들고 있다. 아무리 뒤집고 털고 해보아도 이 일만큼은 논쟁거리가 아닌 것 같은데, 시비를 거니 서로 싸움이 되는 것을 보니 세상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촌사람들을 위한답시고 대신 머리에 띠를 두르고 죽느냐 사느냐 하며 나서는 사람들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일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덩그런 아파트에서 수돗물을 마시고 사는 사람들이, 모기에 물리며 흙탕물에 빠져가며 농토에 물을 대며 살아가는 농사꾼 사정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댐을 막아 물을 가두어 들판에 물을 흘려주는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좀 먹고 산다는 나라가 제일 먼저 했던 치산치수治山治水가 아니었던가.  

  

서로 귀를 막고 악을 쓰기에 상대편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저 강만이 알고 있다’가 되어 싸울 뿐이다. 시골 출신은 너무 싱겁고 간단한 문제인데 글줄이나 익힌 사람들은 어찌 저리 꼬아 가며 어렵게 풀어 가는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는 갓 독립한 아프리카의 어느 자그마한 부족 국가의 수준에서 티격태격하며 살고 있지나 않는지 착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