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기쁨거리(2011)
설날 아침에
온달 (Full Moon)
2015. 4. 15. 10:09
설날 아침에
석현수
코흘리개 적에 할머니로부터 들은 말이다. “설은 없는 사람들 섧다고 설이다.”라고. 즐거운 설이 왜 섧은 날이 될까? 할머니도 그 윗대 할머니에게서 들으신 해석이겠지만,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설은 ‘낯설다’에서 나왔다는 말이라고도 한다. 새로운 해에 대한 ‘낯 섦’, 익숙하지 않은 날이란 설명이다. ‘선 날’의 의미로 ‘설날’이 되었다고 하며, 혹은 ‘삼가다’ 또는 ‘조심해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섧다’에서 왔다는 설명도 있다. 설날을 ‘신일愼日’이라 일컫는 것을 보면 엄숙하고 조신操身하게 보내라는 의미도 담는다. 신일愼日의 愼신이란 한자는 신중하다의 신愼자이다.
설날은 조용한 반성과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날이니 여타의 날처럼 부산할 수가 없다. 설날만큼은 “日新日新又日新일신일신우일신” 하는 마음이고 싶다. 중국 은殷나라 탕왕은 세숫대야 바닥에 이 글을 새기고는 세수를 하려 얼굴을 숙일 때면 제일 먼저 이 글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새롭게 맞았다 한다. 매일은 고사하고 한 해에 딱 한 번 설날 아침에는 이 낯선 한 마디를 새기고 싶다.
살기가 아무리 좋아 졌다 해도 언제나 주위에는 고통 받는 사람이 많이 있다. 없이 살면서 섧지 않은 때가 있으랴마는 새해 첫날까지 이들을 섧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가진 사람들은 기쁨도 넘치지 않게 누리는 신일愼日이 설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