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인사
헛인사
석현수
“이거 맛있는 거예요?”
당연히 맛있다고 할 텐데 아내는 공연한 말을 섞고 있다.
다가서기가 서먹해질 때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는 말거리를 던지며 주인에게 인사를 건넨다. 굳이 의역한다면 “안녕하세요?” 쯤이 될 것이다.
생선가게에서는 언제 것인지를 묻는다.
보나 마나 아침에 가져온 것이라 답한다.
빵 가게에서는 언제냐는 질문이 가기가 무섭게 방금 구운 거라고 할 것이다. 이럴 때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하면 물건 파는 장사꾼이 아니다. 무심코 던지는 말에는 만약을 위해 박아두는 심지가 없다.
손님은 처음부터 왕이 아니다.
남의 가게에 들어갈 때는 허락을 받는 기분으로 첫 말을 튼다. 맛있느냐는 질문은 맛이 있고 없고가 주안점이 아니라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이때 흥을 돋우어 “그럼요, 그러고 말고요.”라는 응답을 보내는 주인은 손님을 강하게 자기 곁으로 끌어당기는 사람이다. 피차에 공들이지 않아도 될 헛말들이 서로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시골 장에서 병아리 몇 마리를 샀던 이가 있었다.
암컷인지를 분명히 확인해 달라고 했지만 키우고 보니 전부 수탉이었다며 원통해했다. 요즈음 시골 할머니들 전혀 믿을 사람이 못 된다며 다른 곳에서 진실게임이라도 벌여 보일 기세다. 다행히 친절한 금자씨 같은 분들이 수두룩 댓글을 올려 이분을 위로해 주었다.
장터 사람은 수컷을 암컷으로 속일 능력이 없다.
그들은 병아리 감별사가 아니어서 그냥 병아리 한 마리 파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수컷으로 물었든 암컷으로 물었든 간에 무조건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쪽으로만 응답해 줄 뿐이다. 꼭 정확성을 기할 일이었다면 길바닥에서보다는 병아리 감별사를 통해 구매할 일이다.
굳이 상대가 속이려 드는 것이 아니라면 속아주는 멋도 멋이다.
세상에는 그냥 해 보는 말이 많아서 이런 것을 적당한 선에서 새겨듣지 않으면 시골 장터의 병아리 꼴이 날 것이다. 헛소리가 귀에 익지 못하거나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역세권 5분 거리’는 접두어쯤으로 해석해야 한다. 곧이곧대로 믿는 이도 없거니와 거짓말이라며 따지는 이도 없다. 헛인사는 무죄이기 때문에 오히려 속아주는 척하지 않는 것이 유죄가 될는지 모르겠다.
일상이 싱겁다고 생각될 때 생활에 소금 한 움큼 치는 기분으로 헛소리는 우리 귀를 즐겁게 해 준다. 손해날 것 없고 굳이 속이겠다는 의도도 없는 맹랑한 헛소리가 시장바닥에서는 최고의 화술이다.
“농약 친 것은 아니겠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아내는 빨간 사과를 쥐고 이렇게 묻고 있을 것이고, 난전의 할머니는
“약이라고는 모르고 자란 것”이라며 시치미를 뗄 것이다.
헛인사는 찬물 한 잔보다 못할지라도 공연한 수고가 아니다. 할머니는 과수원 부잣집 마나님이라도 된 기분에서 얼른 무공해 보증을 해 주지 않았던가? 농약 없이 맺는 열매는 세상에 없다지만 할머니의 입에서는 농약 안 친 사과가 시장마다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