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말을타고(2012)

자랑은 언제 해도 이르다

온달 (Full Moon) 2015. 4. 16. 08:50

자랑은 언제 해도 이르다 

 

석현수 

 

 

 

할머니 세대는 자랑하기를 무척 꺼렸다.

좋은 일은 그냥 덮어두면 좋을 것을 굳이 입에 올리고 보면 자랑 끝에 시샘을 타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이의 자랑도 내심 반가워하지 않았다. 말이 앞서도 부정不淨 탄다고 믿었다.

지금은 자기 알림 시대가 되어 스스로 트럼펫을 요란하게 불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자랑이 화근과 망령을 부른다는 할머니 때의 우려는 없어지고 어딜 가나 제 자랑 소리에 귀가 간지럽다. 자랑은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뀌는 듯 스스로 떠들지 않는 사람은 뽐낼 것이 없는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관심을 끌기 위해 공연한 원망을 늘어놓는 이도 있다. 친정집 부모는 돈이 많다 보니 자식들을 망쳐 놓았다느니 하면서 은근히 경제력을 자랑하거나, 얼굴은 반반한 것이 사치를 전혀 몰라 자기관리를 못 한다면서 딸자식의 순진함을 자랑삼는 이도 본다.

옛날에는 선글라스 하나 사면 달밤에도 끼고 다녔고, 테니스 라켓 들고 버스에 오르면서 요즈음 골프채보다 더 뻐겼다. 모처럼 불고기 외식 한 번 하고 나면 집에 올 때까지 이쑤시개 입에 물고 다니지 않았던가. 이것은 국민소득 980불 시대의 애교 섞인 궁한 자랑거리다.

지금은 2만 불 시대, 자랑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

혼자 고소득층이고 다른 이들은 아직도 40년 전 천 불 미만의 시대에 사는 걸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런 사람들의 자랑을 들어주려면 여간 짜증이 나지 않는다.

밥 먹을 형편 되는 사람치고 코에 바닷바람 쐬지 않은 사람 몇이 있을까? 외국여행 이야기도 군에 가서 축구 경기를 하던 이야기처럼 진부하다. 자랑은 적당한 선에서 멈춰서야 하고 시대에 맞는 자랑으로 바꾸어야 한다. 혹시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우주여행이나 하고 왔다면 한 번 해볼 만한 것인지는 몰라도…….

문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책 한 권 낸 기분에 가는 곳마다 내 저서, 내 저서 하는 사람이나 등단을 거들먹거리는 사람들도 자랑이 도를 넘친다. 제 돈으로 책 내는 주제에 자랑은 웬 자랑이며 잡지사마다 무더기로 신인상을 주는 형편에 등단증서는 마을의 개도 물고 다닐 만큼 흔해졌다. 작가가 십 만을 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지간한 문필가라면 낙서나 하고 산다며 겸손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향노루는 긴 뿔을 자랑하나 숲 속을 달릴 때는 제 뿔에 걸려 넘어지고, 공작은 화려한 날갯짓을 뽐내며 부러움을 사나 이것 때문에 동물원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갇혀 살아야 한다.

갈 길은 멀고 자랑은 언제 해도 이른 법이다.

시경詩經100리를 가려는 사람은 90리를 가고서 이제 겨우 절반쯤 왔다고 생각하라.〔行百里者 半九十〕’라는 말이 있다. 남의 시샘을 사지 않으려는 옛 어른들의 지혜를 다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