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식이라서
구식이라서
석현수
오래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퇴물 취급이다.
휴대폰의 매력 수명은 하도 짧아 수명이랄 것 까지도 없다. 잘 때도 머리맡에 두고 자고, 어디 가든 품에 끼고 다녔던 것을 지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귀한 몸일수록 해는 빨리 지고, 해 지면 바로 추워지는 법이다. 직장 수명도 짧기 그지없어 마흔 중반이면 퇴직을 준비해야 하고, 이르면 50대 초반에 명퇴자가 나오니 좋은 기기機器를 만들어 냈던 좋은 머리도 기기만큼 수명이 짧아지나 보다.
휴대폰이 떨어져 박살내는 소리가 났다.
집어 올리는 순간 나는 분노하고 말았다. 망가져서가 아니라 망가지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 때문이다.
“참 질긴 놈이군,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나다니.”
뒤에 붙여둔 보호 케이스만 두 동강이 났을 뿐 울리는 소리는 멀쩡했다. 예전 같았으면 큰일 날뻔한 일이었음에도 지금은 되레 모진 것이라고 원망을 하고 있으니 내가 제정신인가?
이것이 헤픈 대접을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냥 구식이란 이유 하나로 정나미가 떨어진다.
아침에 일찍 단잠을 깨우는 것은 주인이 알람을 그렇게 설정한 탓이기에 성가시면 당장에라도 ‘매일’이란 항목을 ‘해제’로 바꿔놓기만 하면 될 일이며, 전화가 뜸해진 것은 기기機器의 성능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가 없어진 주인의 탓이지 않은가?
바꾸자는 요구와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는 아내, 자금책(?)의 주장이 호락호락하지 않아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갈 것 같다. 차제에 차라리 망가져서 멈춰 선다면 몰라도 벨 소리가 나는 한 나는 아내의 고집을 꺾지 못할 것이다. 새것은 늘 비싸다는 것이 흠이다. 기기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전화 사용료도 지금 사용하는 기본요금 수준에서 몇 배는 더 내야 한단다. 솔직히 성능을 말하자면 나는 지금 것도 기능을 모르고 몇 년을 써왔다. 그러면서도 새것에 매달리는 이유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세상에 혼자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에서다.
마음이 멀어지니 잘 챙기지도 않는다. 집에 두고 밖을 나서는 일이 빈번해진다. 접이식 휴대폰으론 쉰 세대 취급을 받는다며 신형 획득을 위한 평화적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신형은 구형보다 더 넓을 뿐만 아니라 기기 작동도 손가락 끝으로 쓱쓱 문지르는 것이어서 고급스러워 보인다. 지금 것으로는 아무래도 촌티를 벗기 어렵다.
어느 중소기업에서 일한 적이 있다. 회사 사정도 휴대폰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귀한 분이라면 모시더니 두어 해 지내고 나니 노른자위 대접은 간 곳이 없어졌다. 나로부터 마음이 떠나 있던 사주社主의 마음이 구형 단말기를 대하는 지금의 내 마음 같지 않았을까 싶다.
학교 행사에 초청장이 왔다.
후배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참석해 주시어 자리를 빛내 달라는 주문이다. 공연한 치레의 초청인 줄 알면서 짬 없이 따라나서면 혹시나 지겨워하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지금 나는 어떤 모델일까?”
아직 쓸 만할 나이라고 자위를 해 본다.
전화벨이 절묘하게 울렸다.
“너도 구식이야~.”
간사하고 고약한 주인을 향한 불만이 대단하다. 벨 소리는 계속되었지만, 그냥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달구벌 수필》(2011)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