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탓만이 아니다
음력 탓만이 아니다
석현수
아버지 생일을 까먹다니.
울먹이는 딸아이를 오히려 내가 달래야 할 판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기억을 했었는데 그만 깜빡했단다.
솔직히 아버지는 많이 기다렸다.
연락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은 점차 연락이 와야 한다는 걱정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혹시나 때를 못 맞추면 아이가 나중에 서운해할까 싶어서다. 자식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마음이 덜컥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이 쪽에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축하받고 싶어서 자식에게 전화질하는 아버지라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다.
아이는 아버지 생일을 달력에 표시해 두었다고 했다.
며칠간 친구들과 여행을 하고 왔더니 그새 훌쩍 넘어가 버렸단다.
이해하고도 남는다.
매일 습관적으로 확인하지 않는 한 누구에게나 있는 예삿일이지.
“설마 잊으랴 싶었는데 결국……. ”
“아니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 뭘.”
아버지 책임도 크다. 현대에 사는 아이들에겐 익숙지도 않을 음력으로 생일을 챙기고 있으니. 들쭉날쭉하는 양력과 음력 사이에서 헷갈렸을 것이다.
아버지는 네 할아버지 기일도 깜빡했다.
음력 기일 또한 생일과 마찬가지로 기억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음력이라면 팔월 한가위와 구정 그리고 본인 생일밖에 모르지 않는가.
날짜 환산은 해마다 정초에 풀어놓아야 하는 난수표 해독이다.
작업이 끝나면 커다란 동그라미를 치고 주석을 달아 놓는다.
도둑이 들려면 마당의 개도 짖지 않는다.
아무리 일 년 대비를 잘해 놓더라도 걸어 놓은 달력을 등에 지고 다니지 않는다면 허사다. 음력은 음력 마인드를 가져야만 외우지 않더라도 기억이 오래 간다. 옛 노인이 생신이나 기일을 잊어 버렸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결국, 아버지 제사를 펑크 내고 말았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뒤늦게 알고서는 위령미사를 올리며 석고대죄席藁待罪했다.
“산적에 조기 한 마리가 죽어 상다리 휘는 제사상보다 낫다.”고 하셨던 말씀으로 크게 위안으로 삼았다. 생전에 조기 공양은 많이 드렸으니까 용서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생일이든 기일이든 모두 양력으로 바꿀 생각을 해 본다.
어렵다는 생각이 앞선다.
산 사람의 생일은 당사자 마음이지만, 돌아가신 분의 제사는 오시는 조상 마음이다. 일방적으로 결정해 버리면 귀신들이 곡할 노릇을 만들 수도 있다. 그 집이 그 집 같은 아파트 생활이라 어두운 밤 자식 집 찾기도 난감할 텐데, 설상가상으로 날짜까지 흔들어서야 되겠는가.
산 사람은 생일 한 번 못 챙겼다고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전화로라도 죄송한 마음을 전해 올릴 수 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님의 기일은 깜빡하면 돌이킬 수 없는 중죄다. 옛날 같으면 불효자식이라며 마을에서 쫓겨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수밖에는 어쩔 수 없다.
음력은 내 대까지만 하고 끝내도록 하겠다.
살아있는 나는 음력을 고집하다 자식을 불효로 만들었다.
“아이야 걱정하지 마라, 네 탓만이 아니다.”
그런 나는 제 아버지의 제사도 잊어버리는 아버지가 아니더냐.
더러는 시절 탓도 있겠지. 아버지도, 아버지의 아버지도 세월 가면 점차 잊혀야만 하는 것이 세상 이치거늘, 음력 탓만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