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Full Moon) 2015. 4. 16. 15:07

뒷짐 

 

석현수 

 

 

뒷짐질 나이가 아니라고 한다.

나이가 몇이나 된다고 벌써 뒷짐이냐며 발끈한다. 그렇다면 뒷짐 지는 때가 따로 있다는 걸까? 누가 주는 자격도 아닌데 벌써 라니. 경제활동에서나 사회활동에서나 제동 장치가 고장 나서 브레이크가 밟히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뒷짐이란 용어가 부정적으로만 쓰여 왔기 때문에 고약하게 들렸을 것이다. 뒷짐은 결코 퇴출을 뜻하거나 쓸모 있다,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은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서양 속담에 ‘건초도 햇볕이 날 때 말리라 (Make hay while the sun shinning)’는 말이 있다.

‘개도 제 시절이 있는 법(Every dog has his day.)’이란 격언이 있다.

젊어서 허송세월 보내지 말라는 권고다.

젊은이는 물론 노인들에도 적지 않는 의미가 있다.

저물녘에 건초 말리겠다고 나서지 말라는 주의라고 보면 어떨까 싶다. 좋다는 개 팔자도 늘 좋은 것이 아니니 때와 장소를 가리라는 권고다. 일 할 때는 일하고 뒤로 빠져 줄 때는 과감하게 빠져 주어야 한다. 개인 건강을 위해서라도 뒷짐은 좋은 자세이며 구성원들에게는 큰 덕을 베푸는 것이다.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많다.

차려 자세로 인생을 살겠다는데 누가 그것을 말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부류의 사람일수록 염치가 없고 낯 두꺼운 사람이 대부분이다. 뒷짐 좀 져 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신경 좀 꺼달라고 ‘원로’나 ‘고문’으로 모셔 놓아도 오래 뒷짐을 지지 못한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자꾸 앞으로 불거져 나온다. 뒷짐을 저야 할 나이에 밤 놓아라, 대추 놓으라며 점점 더 참견이 심해진다. 세상일에 너무 관심이 많다. 대단한 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연세에 대단하십니다.”라는 말은 조롱이다.

나이를 수월찮게 먹어가는 노인에게서 무엇이 그렇게 대단할 것이 많이 있겠는가? 좋은 말씀 한마디 해 달라며 덕담을 청하기도 하지만 공연한 가마 태우기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는 책이 나올 정도로 젊은이들은 영악해져 있다. 며칠 신문을 보지 않으면 몇 년이 뒤처지는 세상이다. 그들이 정작 듣고 싶은 것이 노인의 한 말씀이겠는가? 대단하다는 말에 힘입어 더 대단해지려고 하다가는 그만 존경을 잃는다.  

 

뒷짐이 가장 편한 자세다.

그냥 한번 해 보는 이야기가 아니다.

뒷짐을 지면 굽은 가슴이 펴지고 척추가 꼿꼿해지게 된다. 그리고 자세가 굽을 때 뇌는 몸의 불안을 느끼고 앞쪽 배에다 지방을 실어 주었는데, 상황이 반대되니 배에 실어놓은 지방을 오히려 덜어낸다는 것이다. 뒷짐은 척추 문제와 비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게으르고 거만하고 볼품없는 자세로 손가락질하던 것이 요가에 못지않은 건강자세라니 이 땅의 원로, 고문 어르신들에게 강하게 추천하고 싶다. 뒷짐은 결코 퇴출이나 폐기와 동의어가 아니다. 

 

이왕 뒷짐을 질 바에야 마음까지도 같이 뒷짐을 지면 어떨까?

조용히 계셔만 주어도 내공이 깊은 어른으로 존경받을 수 있다.

경영학자들은 경험에 의존한 경영을 경계하고 있다. 의사결정의 인자는 너무나 많아서 경험도 그 중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때론 어른들의 경험이 창의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젊은이에게는 독소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달팽이 걸음의 사고로 현대생활에 훈수를 할 것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를 많이들 애송하고 있다.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비록 팔십 세 일지라도 영원히 청춘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육체의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에 크게 힘을 입는다. 청춘인지 아닌지는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문제는 잘나가는 청춘이 너무 많다는 데 있으며, 착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나이 든 사람이라는 데 있다.  

 

지금은 뒷짐 지는 어른이 필요하다.

힘들이기보다는 힘 빼기가 더 어렵다는 것은 골프장에서나 통하는 가르침이 아니다. 기억력이 대단하다거나 힘이 장사라거나 아직도 청춘이라는 말을 들을 때가 곧 힘을 뺄 때가 된 것이다. 뒷짐은 결코 게으르고 볼품없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 아니다. 옛날 어른들은 자주 뒷짐을 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어른들이 뒷짐 덕분에 존경받던 시절을 기억하자. 뒷짐이 곧 노인네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야 한다. 뒷짐은 가장 편한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