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꽃보다개(2013)

다시 어버이날에

온달 (Full Moon) 2015. 4. 16. 15:13

다시 어버이날에 

 

석현수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임대 아파트에 혼자 사셨다. 이불 한 채와 바닥에 깔아 놓은 전기장판, 미사포 망사를 뒤집어쓴 낡은 선풍기가 겨울 여름나기 냉난방 기구의 전부다. 소박하고 검소함이 몸에 밴 분이라 살림이 단출했다. 임대아파트는 입주자가 세상을 뜨면 다음 사람을 위해 빨리 방을 비워 내야 한다. 예전에 어머니가 그랬듯이 다음 차례의 노인이 이 방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틀 전 화장을 하고 삼우제 날에 사시던 곳의 짐을 빼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임대 보증금도 제때에 빠져나와야 장례비용에 충당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방을 치우며 우리가 하는 짓이 어머니의 성지를 접수하려 드는 점령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의류수거함에 이불 옷가지를 버리고, 접시며, 양은 냄비, 참기름병까지 분리수거를 마친다. 종량제 봉투들이 가세하니 그동안 처가에 들러 눈에 익은 모든 가재도구들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언제 샀을까? 한 번도 쓰지 않은 듯한 천 원짜리 손전등 하나가 눈에 띄었다. 지난 연말쯤에 전철 속에서 샀으리란 짐작을 한다. 어머니를 기억할 유일한 물건이다 싶어 호주머니에 얼른 챙겨 두었다. 비록 외형적으로는 어머니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놓지만, 장모님의 마지막 거처는 내게는 영원한 처가로 기억 속에 남아있게 될 것이다.  

 

고래 등 같던 처가는 지난날 자식들 키우느라 다 파먹혔다. 장인께서 돌아가시고 기울기 시작한 살림은 회복 한 번 없이 이곳까지로 하향 곡선을 탔다. 자식들에게 모든 것 다 내주고 빈껍데기가 되신 장모님께서는 크게 바라시는 것도 없었다. 몸만 부지할 수 있는 좁은 아파트이지만 어머니는 매우 만족해하셨다. 거동이 불편했던 마지막 몇 달간의 투병생활을 제외하고 나면 이곳에서 행복한 기거를 하셨다. 지난해만 해도 여기서 아이들과 어울려 어버이날을 즐거워하며 손뼉 치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올해는 며칠 사이로 장모님이 돌아가신 첫 어버이날이 되었다.  

 

장모님은 딸 4대의 수장이셨다. 여든여섯의 연세였지만 늘 수장의 품위를 잘 유지해 주셨다. 장모님의 딸이 낳은, 딸의 아이, 증손녀는 장모님을 왕 할머니라 불렀다. 옛날 어른들은 노 할머니란 말을 썼다지만 왕 할머니란 호칭이 더 정겹다. 처가는 대를 이어 딸 부잣집이다. 개화된 집안의 내력 때문인지 딸 아들 구별을 하지 않았다. 딸은 많았지만, 용케도 4대에 걸쳐 놀림감 이름을 지은 딸은 한 명도 없다. 어머니는 딸 그만 놓으라는 주술을 부리지 않았다. 아들 하나 붙들어 매 보라는 ‘부뜰이’, 딸 낳는 구멍은 꼭꼭 막겠다는 ‘마개’, 딸은 이제는 그만이라는 ‘종말이’, 딸 만큼은 끝이다, 끝이여라는 ‘끝냄이’ 식은 4대를 이어 없다. 딸들을 기 살리는 집안이다. 

 

장모님은 척추 협착증으로 바닥에 오래 앉으시지 못했다. 지난해 어버이날은 설법하러 대종 선사가 온 것처럼 어머니 혼자 의자에 앉으시고 우리는 의자 주위를 둘러앉았다. 하얀 머리와 검버섯을 한 채 밝은 얼굴, 큰 웃음으로 즐겁게 노셨다. 찍어 놓았던 사진이 딸 4대의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다. 연세가 들면 누구라도 기약이 없다. 올해가 아니니 내년일까 했었는데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며 씨암탉을 챙기는 다른 집과는 달리 장모님은 두 가지를 꼭 챙기신다. 무말랭이 오그락지와 참죽(가죽)나물이다. 이 두 가지를 40년을 한 번도 빠짐없이 상에 올리셨다. 어머니의 조리법도 훌륭했지만, 사위가 원체 촌놈이라 촌 음식의 맛을 제대로 알기때문이다.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서도 그 얘기만 나오면 신 나 하셨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실 수 있을 거라고 하더니만, 꽃샘추위에 꽃이 되어 떨어지셨다. 천지에 장모님의 모습은 없어지고 거처마저도 다른 이의 소유가 되었다. 장모님이 계셨던 그곳, 나의 처가에는 다른 사람이 들었을 것이다. 행복의 문은 다시는 두들길 수도 없고, 두드려도 소리 내며 어머님께서 반기실 리 없을 것이다. 어머님의 빈자리가 갈수록 크게 느껴진다. 병치레가 짧아 당신께서도 고생을 크게 더시고, 자식도 사정 많이 봐 줬을 것이라며 이웃들은 모두 복 노인이라고들 했다. 어머니 생전에 지으신 업보가 큰 상을 받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아내와 내가 우쭐한 마음으로 화답한다. 어머니 보낸 지가 한 달이 채 되지 못한다. 벌써 갈 곳이 없다. 올해는 자식들에겐 참으로 서러운 어버이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