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다
석현수
젊어서 놀아라, 늙어지면 못 노느니라.
건강할 때 술을 마셔라. 약해지고 나면 술이 몸에 받을 리 없다.
컨디션이 좋을 때 담배를 피워라. 건강이 나빠지면 담배 맛도 가시느니라. 세상일이란 다 때가 있는 법이어서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좋지 미뤄 놓으면 영영 하지 못할 수가 있다. 술이나 담배가 좋은 것도 아닐 텐데 굳이 서둘러 해보라는 꾐이야 하겠는가. 무엇이든 때가 있다는 강조쯤이겠지.
젊어서는 차가 없어서 못 다니고,
나이를 먹으면 차는 있으나 다니고 싶은 흥이 싹 가셔서 돌아다니지 못한다.
한때는 먹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세월 가니 먹고 싶은 것도 별로 없어졌다. 먹어도 맛을 모른다고 해야 맞으려나? 그것도 그렇지만 모든 것이 고혈압, 당뇨, 그 때문에 달고 기름진 것 피하는 나이이니 해롭다는 것 굳이 찾아서 먹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먹고 싶을 때 먹고, 돌아다니고 싶을 때 돌아다녀야지 때 지나면 모든 궁합이 신체리듬과 맞지 않아진다.
입는 옷도 날개가 될 때가 따로 있다.
몸에 어울리는 태가 날 때가 있는 법이다.
젊은 때는 어깨에 살점이라도 있어 어떤 양복이라도 걸치기만 하면 입던 옷처럼 달라붙더니 어깨에 힘 빠지고부터는 무엇을 걸쳐도 병아리 우장雨裝 같은 모습이다. 이 색 저 색 다 맞던 몸이 검은색이나 회색 외에는 맞아들지 않는다. 나이 들수록 밝은 색을 걸치라 하고 때로는 과감하라고 하지만,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양 사람은 오직 젊은 저들 입장만 생각한다.
쟤들의 부모는 젊어서 볼 것 다 보고, 먹을 것 다 찾아 먹고, 입고 싶던 것 다 걸친 이들이라서 자식들은 부모를 효도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한때 잘나갔던 청춘으로만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돈 벌고 있으니 내가 먹고 내가 입을 차례로 생각한다. 이 또한 자녀가 보고 자라서 똑같은 대접을 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너희를 키우노라 애쓰다 그렇게 되었다는 부모는 없을 테니 부모는 긍휼의 대상이 아니다.
제주도 천지연 폭포에 갔던 적이 있다.
목표지점에서 100미터도 되지 않은 곳에서 어른은 더는 가기 싫다고 주저앉으셨다.
제주도에서 이 폭포 보고 가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하실 거라며 조금 쉬었다 다시 가도록 권했지만 결국 천지연을 보여 드리지 못했다. 폭포란 물 떨어지는 곳이고, 다른 곳에서도 많이 보았으니 폭포 별다른 데가 있겠느냐는 듯했다. “너희나 많이 보고 오느라, 난 여기서 좀 쉬련다.” 언젠가는 100미터도 한계가 될 때가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손자 보느라 에너지를 마저 태우고 있다.
아내의 관절이 시원찮아서 약을 먹고 있다.
우리 늙어지면 멀리, 그리고 오래 여행이나 다니자던 약속이 점점 더 미심쩍어진다. 체력이 약해졌는지 내게는 대상포진이 달려들고, 산책도 시간이 길면 피곤이 몰린다. 서울 대구 간 운전도 힘에 부대낀다. 아홉시 뉴스를 마저 보지 못하고 잠자리를 펴야 하며, 아침에는 꼭두새벽에 달그락거리며 집 안을 헤집고 다녀야 한다.
건강도, 맛도, 옷도 하나같이 때를 잃어버렸나 보다.
모든 것이 제대로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다. 늙은 영감이 되어 간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잔고는 얼마나 남았을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면 아직도 늦지 않았을까? 머리에 물감이라도 들여볼까? 흑진주처럼 까만 윤기 자르르 한 것으로 바른다고 젊어질 수 있을까?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가 그의 묘비명에 썼다는 문장이 생각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누가 번역했는지 몰라도 대단한 우리말 실력이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