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로데오
한우韓牛 로데오
청문회를 보면서 서양의 로데오를 떠올렸다. 카우보이들이 길길이 날뛰는 황소 등에 올라 떨어지지 않고 누가 오래 버티느냐를 내기하는 경기다. 여의도의 로데오는 서양의 것과 별다를 것이 없겠지만 단지 수입 소를 쓰지 않고 맹수에 가까운 청도 한우를 사용한다는 것이 다르다. 신토불이 정신에 입각한 구상인 모양이다. 경기는 매스컴을 통해서 전국적으로 생중계된다. 황소 등에는 안장鞍裝이 없다. 흔드는 자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자의 대결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심판관의 합격 방망이가 울려 퍼질 때까지 죽기 살기로 매달려 있어야 한다.
로데오는 연속극마저도 시들하게 만들 만큼 인기가 좋다. 자주 열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권이라도 바뀌면 한꺼번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보통 때는 이름조차 함부로 부를 수 없었던 주연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연속극처럼 매일을 정해진 시간에 매달리지 않아서 좋다. 등장인물이 많다 보니 이곳에 얼굴 한번 내밀지 못해도 큰 인물 대접이 못 된다. 장관 자리만 해도 스무 개에 가깝지 아니한가.
한우 로데오는 2000년도에 도입된 제도로 대통령이 임명한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국회가 국정 수행 능력과 자질 등을 검증하려고 만든 제도다.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길들이기로 보면 될까? 높은 자리 앉기 전 혼내겠다는 심포일까. 초죽음 직전까지 끌고 가야 박수소리 요란해진다. 인정머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다. 서양 로데오에는 낙마하는 기수가 다치지 않도록 광대clown가 나와서 황소의 접근을 막아주는 보호막 역할을 해 준다. 그러나 여의도일 경우 이런 광대조차 두지 않는다. 잘되면 님 덕분, 못되면 내 탓이어야 한다. 등을 떠미는 쪽에서는 부디 살아서 돌아오라는 당부 외에는 해 줄 말이 없다.
관전평은 늘 박하다. 질문을 부드럽게 하면 소가 순해서 경기가 재미없다고 난리고 너무 심하게 흔들면 저질이라는 라벨이 붙는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고 빈정댄다. 기수가 잘 잡고 버티고 있어도 불성실한 답변이라고 한다. 답이 능숙하면 내로남불이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만들어서 놀려댄다. 시청율이 높다고 해서 이것이 반드시 좋은 프로그램은 아닐 것이다. 개그 프로가 재미있다고 해서 늘 웃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여의도 특설무대 한우 로데오를 거둘 수는 없을까? 여의도 한우 로데오는 기수에게는 너무 잔인한 경기다. 행정부를 견제하는 입법부의 검증이란 허울 같아 보인다. 글자대로라면 聽聞會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시간이 질문공세이고, 답변은 하나 제대로 귀담아 듣는 이가 드물다. 왜 장황한 질문을 했을까? 생중계여서 카메라에만 정신이 팔려 말을 많이 한다. 제사보다 잿밥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차라리 비공개로 하고 결과를 내면 더 좋을 텐데. 공개 또는 알 권리를 앞세워 쇼 한 프로 보여 주는 같다. 장기간 인물하나 키우기도 힘든데 앞으로 국가의 중책을 맡길 인재를 공공연하게 비틀고 꼬집어 조롱하며 채신머리를 없게 만들어서 무슨 재미를 얻고자 한다는 말인가. 한우 로데오를 보면서 실컷 웃다가도 뒤끝이 늘 씁쓸하다. 끝까지 잘 잡아 붙들고 있으면 국회 동의서에 도장하나 찍는 일이요, 제 성에 못 이겨 넘어지면 쇠똥에 미끄러져 허리 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