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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끈을 묶다
온달 (Full Moon)
2018. 3. 30. 18:57
구두끈을 묶다
김 산
어떤 시간이 있었다
그 어떤 무력이 그 시간을 멈추게 했던 것일까
시간은 진전하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작은 손을 뻗었으나 차마 잡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귓바퀴에서 이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따라오라는 것인지, 저기 멀리로 가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공명이 귓속의 자갈을
마구 어지럽게 굴리고 있었다
눈물과 타액이 하나가 되면서 목선을 타고 흘렀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면서 어떤 거대하고 밝은
통로를 통과하고 있었다
팔뚝의 솜털을 흔드는 공기의 저항이 느껴졌고
시간은 비로소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죽기로 했던 비장함이 비겁함이 아니었다며
변호했지만 이내 절규로 바뀌고 있었다
그렇다, 푸른빛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빛은 한 번도 색을 가져본 적이 없으므로
나는 맹인의 차가운 동공만을 신뢰한다
허름한 노인이 놀이터 벤치에 구부러져 있고
그 주위로 비둘기들이 모여들었다
아무 색도 없는 빛을 종일 해바라기하는 시간이
모래성 안에 갇혀 조용히 울고있었다
차곡차곡 허물어지는 시간이여!
오늘도 나는 내 낡은 구두끈을 질끈 동여맨다
너에게로 가는 시간이 조여온다
자료출처: 월간문학 590호 한국문인협회
김산 2007년 『시인세계』등단.
시집 『키키』『치명』 김춘수 시문학상. 제주 4·3 평화문학상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