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의 인기 없는 에세이
러셀의 인기 없는 에세이1)
인기 없는 에세이라니? 혹시 노이즈마케팅인가? 버트런드 러셀이
쓴 에세이라면 책방에 올려만 놓아도 잘 나갈 텐데. 러셀 스스로가
인기가 없는 에세이Unpopular Essays라 작심하고 제목을 달았으니 번역
자가 임의로 ‘재미있다’고 고쳐 적어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겠지.
러셀은영국의 철학자이며, 수학자, 논리학자, 과학자, 사회사상가
이다. 러셀은 ≪런던 타임스≫가 “500년 만에 나올까 말까 한 위대
한 인물”이라고 극찬할 만큼의 위인이다. 러셀의 글은 철학에서 수
학, 과학, 사회학, 교육, 여성, 정치, 예술, 종교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모든 영역의 전문가였기에 어느 것 하나 쉽게 독자가 이해할 수 있
는 평범한 상식 수준의 것을 뛰어넘는다. 자신을 무정부주의자, 좌
파, 회의적 무신론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인기 없는 수필은 그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출간을 준비했던 에세이집이다. 러셀의 화려한
경력을 미루어 보아 전공자의 전공 서적이면 몰라도 비전공자들에
게는 그의 에세이집이 상당히 어렵게 느껴지리라는 것을 사전에 염
려한 것이 아닐까 싶다. 125
인기 없는 에세이는 12개의 작품을 싣고 있다. 모든 글이 제목
만 보아도 재미가 없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일반인의 철학’, ‘철학
과 정치’, ‘철학의 궁극 동기’ ‘인류를 이롭게 한 사상들’에서는 철학
에 대한 학습이 선결되지 않으면 읽어도 내용 파악이 어렵다. 그러
나 다행스럽게도 글을많이썼던러셀은자기가언급하고 있는철학
에 대해 자신의 글은 철학을 전공으로 하는 철학자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본래의 철학대중 교육을 받은 일반인들에게 있어흥미 있
는 사항을 취급하는 것이다」라는 전제를 달고 있다고 하였으니 글
을 쓰기전눈높이를한껏낮추었다는말로이해해야 할것같다. 아
무튼 여전히 난해하여 친숙한 맛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총 12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앞의 3편은 철학에
관한 글이다. 「일반인을 위한 철학」「철학과 정치」「철학의 궁극적
동기」이 세 편은 러셀의 철학적 견해를 담고 있다.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원론에서부터 철학이 한편에서는 과학에, 다른
쪽에서는 종교와의 관계까지 연결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18세
기까지 과학은 흔히 「철학」이라는 것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리스 시대부터 뉴턴에 이르기까지 천문이론은 「철학」에 속해 있었
다고 한다. 왜냐하면 천문이론은 불확실하고 경험에의하지 않고 순
수한 이성에 의하여 인식하고 설명하며 사변적思辨的이라는 이유 때
문이었다. 아울러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라는 B.C. 610~ 546년경
의 그리스의 철학자는 기원전 6세기에 이미 일종의 진화론을 가지
고 있었다.
인간이 물고기의 자손에서 진화했노라고 했으나 이것은 하나의
사변이어서 철학이었다. 그러나 다윈Darwin, 1809~1882의 진화론은 과학
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화석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생명의 여러 126
가지형태와계열과세계의많은부분에있어서동식물의 분포에기
초를 두었기 때문이라고 러셀은 설명한다.
이어지는 두 편 「인류를 이롭게 한 사상들」「인류에 해를 끼친
사상들」은 인류를 이롭게 한 사상과 해롭게 한 사상에 대한 서술
이다.
이롭게 한 사상 중 가장 분명한 것은 인류의 수에 대한 문제로
보고 있다. 인간이란 것이 수가 적어서 야수를 두려워하고 밀림이
나 동굴 속에서 불안정한 생활을 영위하며 음식물의 확보에 고생
을 한 시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시대를 일관하여 사람들이
그 특수한 재주를 사용한 것은 주로 인구의 총수를 증가시키는 것
이었다고 한다. 인류는 몇 가지 점에서 점점 동물과는 달라져 갔다.
인류는 선천적인 재주에 비해 후천적으로 획득한 재주가 많다는
점과 미리부터 충동을 억제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큰 이점으로
들고 있다.
「인류에 해를 끼친 사상들」에서 과거의 역사에 비추어 가장 명백
한 사례는 사람의 개인적인 편견에 따라 종교적이라고도 미신이라
고도 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신념으로 된 체계이다. 그릇된 신념을
갖는 가장 강력한 원천의 하나는 선망(부러움)이다. 정치적으로 해
로운, 그릇된 여러 신념을 발생시키는 또 하나의 정열은 오만한 마
음으로 국적․성․계급․신조 등을 오만으로 보았다.
「지적 농간의 개요」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인간이이성적 동물
인 것은 지성 덕분인 것으로 보았다. 지성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
시되지만 가장 분명히 제시되는 것은 산수 능력이라고 했다. 정부가
조치하면일반이 어리석은일을믿도록얼마든지 농간을부릴 수 있
다고 자신했다. 적당한 군대와 많은 급료 그리고 좋은 음식을 동원 127
하여 백성들을 회유하면 30년 이내에 2 곱하기 2는 3이 될 수 있고
물이 100도에서 얼고 0도에서 끓는다고속일 수있어 국가의이익에
봉사할 수 있는 농간을 부릴 수 있다고 장담했다.
「피압박자의 뛰어난 점」에서 인류가 지니고 있는 뿌리 깊은 잘못
된 생각의 하나 일부의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도덕적으로 뛰어났다
든가 뒤떨어져 있다든가 하는 생각이다. 이런신념은잡다한 형태를
취하여 나타나는데, 어느 것이나 합리적인 근거를 지니고 있는 것은
없다. 이와 반대로 글 쓰는 사람들, 특히 도덕을주장하는 사람들 사
이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존심을 직접 표현하는 일이 비교적 적다. 이
들은자기 동포나아는 사람들의일을 나쁘게생각하는 경향이있으
며, 따라서 그들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쪽을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고 보았다.
「교사의 사명」「인류의 장래」「나와 알게 된 저명인사」「내가 쓴
부고장」에서 독자는 다소간의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부고장은 본인이 사망했다는 가상 상황에서 직접 작성해본 문학
작품이다. 생전 업적과 공과를 가리는 일을 남의 손에 맡기기보다는
본인이 직접 해본 것으로 보인다. 앞의 8편보다는 그렇다는 말이지
뒤쪽 4편 역시 인기 있는 에세이는 결코 아니다. 역사적 사례들의
인용을 통해우리가살아가는시대와앞선시대를대조시키는 데 적
절히 활용했다. 폭넓은 인문학적 배경이 충분하지 않으면 이 또한
흥미를 유발하기에는 다루고 있는 것들이 지루하고 딱딱하게만 느
껴졌을 것이다.
보통 수필집을 한 권을 준비한다면 최소한 50편 이상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고작 12편이다. 작품 하나하나는 평상의 수필보
다는 분량이 5배를 넘어야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다. 차려진 메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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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라도 하품이 먼저 나오는 글제들이다. 밤잠을 이루지 못할 때
이 책을 펼치면 수면제 역할은 충분히 할 것이다. 모든 작품이 시사
성이 다분히있는 것들이긴 하나글의 배경이1950년대의 전후의시
사성이많은예가등장하여 지금의 것과는많이달라졌다는것도 한
몫한다. 그렇다고 러셀이 원본을 수정하여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고
쳐놓은 것도 아니니 번역자로서는 어찌할 도리없이 번역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여하튼 재미가 없을 구비조건은 모두 갖춘 책이다. 원
작자가 essay라고 했으니 차라리 당시의 에세이스트들은 어떻게 에
세이를 대했는지를 이해하는 훌륭한 교재로 생각해도 좋을것 같다.
수필과에세이를 혼용하고있는우리 상황이라이 책은더욱더 우리
의 취향에서 멀어졌을 것이다. 우리가 익숙지 않은 아주 딱딱한 경
수필硬隨筆 쪽으로 보면 어떨까 싶다.
나는 러셀의 에세이를 통해 몇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있었다. 먼
저 하나는 몽테뉴의 에세이에서 느꼈던 몽테뉴의 글쓰기를 러셀의
작품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단락
과 단락을 이어가며전개하는 논리가 아니라별개의것들이모여 전
체의 모양을 이루는 모자이크 형태의 글이다. 따라서 서론 본론 결
론이란 내밀한 형식의 흐름을 느끼게 하거나 무엇으로 말의 매듭을
짓고 넘어가려는 수미상관을 괘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이
보통의 논설이나 평론과의 차이다. 그야말로 무형식의 형식을 빌려
서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펼치는 글을 쓰고 있다.
다른 하나는 당시 시대적 상황을 주로 토픽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소재가 된 자기 글을 쓴다는 의미도 확실해졌다. 자
기 신변 주변의 개인적인 소재들을 뛰어넘어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
는 공리적인논쟁이주가되고 있다는점에서에세이의 진수를느낄 129
수 있었다, 에세이는 곧 문학 활동이면서 사회에 공헌하거나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거리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몽테뉴가 신․구교의 충돌에서 어느 쪽도 지지를 보내지 않으며 무
난하게 직위를 수행했던 것에 비하면 러셀의 경우는 1차 대전에 영
국의 참전을 극렬히 반대한 사회운동가로서 감옥에서 지내야 했던
점이 달라 보이는 것과 같다. 몽테뉴의 에세이에서 온유함이 지배적
이었다면 러셀에서는 위트, 아이러니 그리고 지혜와 박진감이 넘치
고 있다.
그는 이 책 서문 말미에 서평가들이 난해하다고 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고 하면서도 그 난이도라는 것은 머리나쁜 열 살 아이
를 기준으로 하면 그럴 거라며 러셀 고유의 재치로 인기 없음을 변
호하고 있다. 그가 철학자․수학자․사회평론가라는 사회적 위치와
노벨 문학상(1950년)을 받았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모든 글은 신중
에 신중을 기했을 것이다. 인기 없는 에세이에 대한 자신의 진단
이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1) 버트런드 러셀/ 장성주 옮김 인기 없는 에세이(2013), 함께 읽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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