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격 글쓰기를 위하여
고품격 글쓰기를 위하여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바탕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좋은 글 기대하기다. 문제는 곧 인문학적 소양이다. 씨를 뿌려 좋은
열매를 맺게 하려면 종자도 토양도 좋아야 한다. 문학도에게는 인문
학적 바탕을 두고 말한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은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일로 알았지만, 요즈음은 성전환 수술이있어
그것마저 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것 말고 세상에 안 되는 일이
하나 더 남았다. 전혀 준비 안 된 작가의 좋은 글쓰기다. 호박에 줄
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겠나. 함량 미달 작가의 고품격 글쓰기가 그
러하다.
인문학적 바탕이 없으니 고품격 글쓰기가 될 수 없다. 이런 글쓰
기로는 수박의 단맛을 담아낼 수 없다. 글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문학적 바탕이 되어야 글다운 글이 될 것
이라며 자성의 목소리가 크다. 지금은 읽는 쪽 쓰는 쪽 모두가 인문
학적 소양이 없으니 서로가 불편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을 테니까. 121
요즈음 글들을 보면 사적이고 정적인 글들이 대부분이다. 문예지
마다 실리는 글들이 그 글이 그 글이다. 아쉽게도 이들의 독자란 대
게가 익명의 다수가 아닌 가까이 있는 소수의 동료다.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니 글 평도 후하다. 속내는 내 글이나 네 글이나 거기가 거
기다 싶어 무관심 속에 칭찬 일변도의 말잔치만 벌일 뿐이다. 아무
런 자극이 없으니 발전 또한없어 제자리걸음이다. 서점으로 출고되
어 다양한 독자들을 만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그나마 가까운
도반道伴들마저도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보내주는 작품집을 완독해
주는 상호부조도 없다. 이런분위기에 건전한비평이나 절차탁마切磋
琢磨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사서 보는 읽을거리가 아니라 공으로
보내오는 책이기에, 상대의 서재에 꽂히기보다는 잠시 머무르다 떠
나야 하는 서글픈 과객過客 같은존재가 문인들의 글이다. 이것이 자
비출판의 한계요, 현실이다.
고품격이란말을 철학적이란말과 혼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못
따라가면 어려운 글쓰기를 하고 비몽사몽간에 뜻 모를 이야기만 하
게 된다. 이 지경에 이르면 고품격은 물 건너간다. 차라리 그렇고 그
런 글이 편하게 읽힌다.
가끔 만났던 고품격 작품 중에는 잡박雜駁하여 읽고 나서도 남는
게 없는 것도 더러 있긴 하다. 이럴 때는 이해력이 부족해 소화불량
에 걸렸을지는 모른다는 자기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철학이란
누구한테나 선뜻 문을 열어주는 만만하고 손쉬운 학문이 아니지 않
은가. 바탕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을 기준으로 작품을 쓰는 사람
은 없을 테니까. 독자의 수준이 작가의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허
다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작품을 통해 자기진단과 반성을 할 수
있는 정도라면 이런 독자는 고품격 글쓰기에 상당히 가까워져 있다 122
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고품격 글쓰기를 위한 전제 조건이 철학적이어야 한다면 철학적
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철학philosophia이 무엇인지부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어의 철학이라는 용어는 원래 그리스어로 필로소피
아philosophia를 뜻한다. 필로소피아는 필로스philos, 사랑함와 소피아sophia,
지혜라는 두 말을 합성한 것이다. 필로소피아라는 말을 그대로 번역
하면, ‘지혜에 대한 사랑’ 또는 ‘애지愛智’를 뜻한다. 철학은 ‘이론적
지식’뿐만 아니라 ‘선악의 인식’을 내용으로 삼으며, 비판적 자기 검
토를 통해 올바른 실천적 행위를 목표로 하는 ‘실천적인 지식’을 말
하기에 결국 ‘지행합일知行合一’이 되어야 한다. 철학적인 글쓰기는 철
학적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글 쓰는이가 고품격의 사유思惟로 살
아가지 못하면서 고품격 글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
하는 일일 것이다.
작가가 철학적 삶을 통해 고뇌에 찬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 때까
지, 독자가 철학적 글을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서양과 동양의 글쓰기 모습은 아주 다르
다. 이 다름을 알기 위해서는 쓰기 어려워도 철학적 글을 써야 하고
읽기 어려워도 고품격 글을 읽어야 한다. 동서양 문화의 차이를 극
복해야 한다. 혹자는 이 차이를 통합적 사고에 익숙하면서도 분석적
사고에 취약한 아시아 지성인의 흠결로 보는 이도 있다. 특별히 우
리만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닌 아시아적인 공통점이라니 조금은 위
안이 된다.
우리의현주소는 인문학이 대세라고말하고 있다. 말은 그렇게 하
면서도 자구 노력은 하지 않고 타성에 젖은 글쓰기를 하고 있다. 감
각과 정서에만 의존하는 글쓰기를 탈피해나가야 한다. 자기중심의 123
자화자찬에서 벗어나 보자. 칭찬 일변도의 주위의 글평에 안주하지
말자. 이는 영양가 없는 빈 숟가락을 글쓴이 입에 물려주는 행위다.
난해한 글이 철학적인 글이 될 수는 없다. 유명 철학자의 경구나 채
근담菜根譚을 많이 인용한다고 해서 글이 철학적으로 되지 않는다.
고품격의 글은철학자를흉내 내는것이아니라글쓴이의 철학적 삶
이 보여야 하며, 그것이 글로 묻어 나와야 한다. 인문학적소양을 기
르는 일은 가장 중요하다. 수박이 먹고 싶다면서 호박에 줄 긋고 먹
는 성급함이 없어야 한다. 철학적인 삶을 통한 고뇌의 흔적을 보여
줄 수있을때까지모두는많이 듣고 많이읽어야할 것이다. 구양수
歐陽脩의 3다多 중 많이 쓰기[多作]는 그 뒤의 일일 것이다.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