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는 축복이다
더위는 축복이다
열대야에 잠 못 이룬다며 아우성을 쳐도 이제 여름도 막바지다. 달력을 보니 8월 7일이 입추(立秋)다. 절기상으로는 가을이 눈앞이나 앵앵거리는 모기의 파상공격과 매미 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매미의 소리통은 30도만 넘으면 자동으로 열리기 때문에 밤낮 구분 없이 없단다. 두고 보자 가을 기분은 처서가 지나야 할 테니까. 23일이 처서(處暑)다. 처서라면 모기 입도 삐뚤어진다는 절기 아니던가. 말복 16일에는 삼복더위도 졸업하겠지. (그럴지는 모르지만) 올여름은 여름답다. 여름은 더워야 한다. 여름 한 철을 보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여름이 여름 같지 않기를 바라서야 하겠나.
창업도 여름이 제일 많다고 한다. 길거리나 공원 어디든 자리만 펴면 창업이다. 주로 먹거리를 중심으로 가게를 편다. 날씨가 덥지 않으면 과일 장수는 허탕이다. 수박이 그렇고 참외가 그렇다. 여름 한 철 질금질금 내리는 여우비 통에 우산 장수는 먹고산다. 넘쳐나는 빙과류, 아이스크림도 여름 한 철이다. 해수욕장이 그렇고 유원지가 그렇다. 여름 한 철 벌어 한해를 먹고 산다는데? 더위가 어찌 이들에게 축복이 아니랴.
농부들에게 무더위는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담보하는 보증수표다. 무더위 속에 벼는 자라고 날씨가 푹푹 쪄야 땅속 고구마 알은 굵어진다. 여름 날씨가 시원하기만 하여 낮으면 과수든 농작물이든 냉해를 입는다. 먹거리의 이동은 농촌에서 도시로 연결되어 있어 흉년은 농촌만의 불행이 아닐 것이다. 여름이 더위 맛을 잃고 시원하기만 하다면 농촌에 있는 고향 사람 지킴이들 한 해 입맛을 잃는다.
더위 탈출을 위해 냉방기를 얼른 생각하지만, 냉방기는 근본적인 대책이 못 된다. 약간의 위로는 될 수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미련하긴 해도 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더위에 맞서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집에는 벽걸이용 에어컨 하나를 매달고 있다. 40년이 가까운 것이나 용량을 늘리거나 현대화가 필요하지 않다. 이유는 사용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안전 점검이나 작동 점검을 제외하고는 쓰지 않는다. 그런 걸 무엇 때문에 달아 놓느냐 한다면 안 틀어도 그것이 있으면 덜 덥다는 이유 때문이다. 있는데 틀지 않는 것과 없어서 못 트는 것 차이에서 느끼는 온도 차는 대단히 크다. 심리적 위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 냉방기는 천장에 매단 조기 한 마리 역할을 할 뿐이다. 밥 한 숟갈 뜨고 매단 고기 한번 보고 두 번 보면 너무 짜게 먹는 것 아니냐며 꾸중하는 자린고비 이야기, 우리 집 벽걸이는 벽에 매단 생선이다.
몸은 길들이기대로 간다. 낮에 냉방기를 돌리면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도 켜 놓아야 한다. 추운 곳에서 갑자기 더운 곳으로 들락거리면 소위 냉탕 온탕이 되어 냉방병에 걸리기 쉽다. 아예 맛 들이지 않으면 몸이 스스로 알아 자기조절 능력을 갖춘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대구의 더위는 지독하나 더위 때문에 목숨을 잃는 숫자는 타지에 비해 낮다고 한다. 더운 곳에 오래 살다 보면 저마다의 섭생법(攝生法)을 하나씩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나의 섭생 방법인 피서오우(避暑五友)를 소개해보자. 대자리, 삼베 홑이불, 목침 베개, 인견 파자마와 부채가 나의 필수 여름나기 장구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방법을 그대로 전수해 쓰고 있다. 나의 오우(五友)는 모양보다는 기능에서 그 진가를 드러낸다. 대자리는 습기를 모른다. 바닥에 시원한 청량감을 더해 준다. 삼베는 덮으나 마나 한 것이지만 우선은 무엇을 덮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고 모기의 공격으로부터 방탄 역할을 해 주어서 좋다. 목침은 높고 딱딱하여 자주는 아니지만, 베개가 갑갑하다고 느낄 때는 이것보다 편한 대용품은 없다. 인견은 가볍고 바람이 잘 통해서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부채는 자가발전(自家發電)하는 수동식 선풍기라 싫으면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아날로그식 피서 장비다.
누진 전기세 제도가 생기고부터는 더 엄두를 못 낸다. 정부에서 세율을 내리겠노라며 약속을 해 놓고 있지만, 더위도 문제지만 대책 마련이라고 내 놓는 정부 조치가 물러 터졌다고 본다. 어느 관료가 국민이 미워서 누진세를 생각했겠나? 전력의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기 때문에 일시에 전력이 소요되는 시간대에 산업현장 공장가동에 지장이 있을까 봐 내놓은 조치였을 것일 텐데? 원자력 발전도 서서히 줄이는 때에 전력 사정이 더 열악해진 상황에 내 놓는 당근을 냉큼 반겨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복 많다고 그 복 다 쓰지 마라. 복이 다하면 몸이 빈궁해진다(有福莫亨盡 福盡身貧窮). 명심보감의 말이다. 주는 복 다 쓰고 가면 후세에 대장부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후세수칭 대장부(後世誰稱 大丈夫). 복을 너무 누리다 보면 그 맛에 길들어 분별력을 잃게 되고 한도를 모르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는 말이다. 설령 날씨가 무덥기로서니 이게 어제오늘의 일인가. 참을 것은 참아주어야지 형편이 된다고 해서 개인에게 할당된 복을 제 것이라 마구 써 버리는 것은 나라의 에너지를 빈궁하게 만들 수 있다. 누진세 정도야 골프 한 번 라운딩하지 않으면 될 것 같고, 공장이 멈춰서는 일이야 나랏일이니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몰라도. 누진세는 국민들에게 주는 불필요한 규제가 아니라 에너지 절약을 독려하기 위한 법 국가적 방안이었을 것이다.
여름은 여름답게 더워야 하고, 겨울은 또 겨울답게 추워야 한다. 모진 더위에 추운 겨울을 그리워하고, 혹한 속에 그래도 여름이 낫다는 위안으로 삼고 살아갈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문명은 모두 사계절이 뚜렷했던 온대 지방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사철이 더운 곳엔 시인이 없다고 한다. 매일 피는 꽃을 보고서는 시심(詩心)은 나오지 않는가 보다. 겨울 눈 속에서 싹을 틔우며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가운데 문학의 힘도 나오는 것일까. 사철 추운 남극과 북극에 문화유적지는 없다. 여름은 여름답게 푹푹 쪄야 곡식이 되고 겨울은 겨울답게 살을 에어야 다음 해 병충해가 없다. 모든 것이 자연의 조화다. 우리의 건강은 여름과 겨울을 통해 단련돼간다. 온대 지방의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은 신이 내린 큰 축복(祝福)인 셈이다. 2018년 대구는 더위가 대구를 대구답게 해 주었다. 더위에 어떻게 지내느냐는 안부 인사도 이곳저곳에서 받았다. 더위야 맹위를 떨쳐줘서 고마워. 올겨울 너는 어디에서든 꼭 살아남아 내년에 또 大프리카로 오려무나. 나는 화려한(?) 피서오우(避暑五友)를 앞세워 너를 다시 대적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