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Full Moon) 2018. 11. 2. 12:12

오지랖



 오지랖이 넓다는 이야기는 좋은 의미가 아니다. 오지랖은 웃옷

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오지랖(이) 넓다는

주제넘게 아무 일에나 쓸데없이 참견한다는 말이다. 요즈음은 이

말 뒤에 ‘떤다’는 접미어를 붙여서 쓰기도 한다. ‘호들갑을 떨다.’

에서 유추해보아도, 오지랖을 떠는 것은 채신머리가 없어 보이는

것 같다.


 남의 일에참견하고 싶은 충동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완장 찬 감

독자 기분으로 남의 일에 콩 놓으라, 팥 놓으라 한다면 다들 싫어하

겠지만, 무관심보다는 오지랖이 낫지 않을까. 관심이 있다는 거니까.

그러나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어버릴 경우에는 난감해진다.

비 올 때 질퍽거림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한 공원 관리직원의 수

고가 많았을 것이다. 코코넛 껍질로 엮어 만든 수입산 깔개를 깔았

으니 제법 많은 돈을 들였던 것 같다. 그러나 공사에 큰 실수가 있

었다. 장지만큼이나 긴 대못이 길 위로 솟아나 있었다. 설명이 어려

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그 위치도 명시해서 담당 부서에 통보         39


해주었다. 전화로 몇 번이나 독촉하고 확인하는 공도 들였지만, 수

정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대의 무관심한 응대에 큰 실망을

했다.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민다. 스트레스를 사서 받

은 셈이다.


 고무판을 깔 때는 시멘트 바닥 위에 쌓인 먼지를 철저히 제거하

지 않으면 접착제가 고무에 제대로 붙어주지 않는다. 현장 감독자가

이걸알고 있을까하여 가던길을되돌아와 젊은감독관에게설명해

준 적이 있다. 옛날에 실패한 경험이 생각나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

었다. 젊은이는 겉으로 고분고분했지만, 속으로는 반기지 않는 눈치

가 역력했다.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대접이었다. 한 달이 지나

자 고무판은 들뜨기 시작했고 접착제 재작업을 하느라 공사판 젊은

이가 시달리고 있었다.


 버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평소 자주 타고 다니던 버스에 환승을

했는데도 ‘환승입니다.’ 대신에 ‘감사합니다.’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감사합니다.’ 소리는 교통카드에서 또 결제되었다는 알림이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고민에 빠졌다. 기사 분에게 이야기할까? 말까? 이건

전산 기계의 착오야. 이 버스가 저 단말기기를 달고 다니는 한 온종

일 다른 승객에게 부당한 결제를 저지를 것이 아닌가. 쉽게 이해하

고 넘길 일이 아니다. 이때 또 오지랖 기가 발동한다. 갈 길이 바쁜

직장인이 할 일인가? 어린 학생이 나서야 할 일인가? 모두가 아니라

면 누가 하랴. 내일 버스회사를 방문하여 기계교정을 요구하기로 마

음을 먹었다. 버스 번호와 날짜 시간을 기록해 두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상황이 달라졌다. 공연한 걱정거리를 혼자

떠안고 하루 기분을 망쳤다. 환승 시 ‘환승입니다.’ 소리가 없었던 것

은 전 버스에서 내릴 때 교통카드를 찍지 않고 내렸기 때문이었다.           40


유치원생도 알 일에 실수를 해버렸다. 당연히 하차 시에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찍어 ‘하차입니다.’라는 소리를 들었어야 하는 건데 그걸

놓쳤다.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무슨 얼어 죽을 오지랖을

떨고 다니나. 이번 일은 정의감도 아니고 건전한 시민의식도 아니

다. 예삿일로 보고 지나갈 일도 굳이 ‘내가 아니면 누가 하랴!’는 용

기. 죽어도되고 죽지않아도될 때죽는것은용기를손상하는일이

라고 했다≪맹자孟子≫. 공연한 일에 하는참견은 걱정거리를 자초하

는 일이다. 어디에나 포청천이 되어 시시비비를 가리려 들기보다는

불쑥불쑥 나서는 할배 근성부터 고쳐먹어야 할 것이다.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