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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고개
온달 (Full Moon)
2019. 7. 6. 09:14
국수고개
이 진엽
마음이 심란할 땐 국수를 먹는다
젓가락에 칭칭 늘어진 능수버들 면발들
후루룩 잘도 넘어간다
오늘 하루
눈을 뜨면 세상은 돌같이 목젖에 걸리는데
멧새들이 해맑은 날갯짓 소리로
국수는 젓가락 위에 사뿐 앉았다가
호르르, 잘도 고개를 넘어간다
한평생 찧고 찧어도 삼키지 못한 것들
상처와 불길과 쓰라린 회한들을
고운 면발로 이렇게 삼켜야 했었는데
국수는 쭈르륵 잘도 넘어간다
바위처럼 굳이 이끼가 낀 마음을
가슴에 뉼어붙어 꺼지지 못한 숯덩이를
가늘게 풀고 풀어 꿀꺽 삼키고 싶은 이 봄날
칭칭 늘어지 능수버들 실가지를 보며
국수 한 사발을 다 비운다.
이진엽 시인
≪시와 시학≫ 신인상
시집:『아직은 불꽃으로』『낳선 벌판의 종소리』『겨울 카프카』『그가 잠깨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