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Full Moon) 2020. 2. 17. 11:47




봄비


                          김 윤배

 

세상이 빗방울 위에 놓인다.

겨우네 마른 소리를 내며 떠나던 나무들이

슬며시 뿌리를 내리고

발등에 누워 젖고 있는

제 그림자를 내려다 본다.

 

내, 지난 겨울이 저랬던가

숲이 빗방울을 조용히 내려서고

오랜 잠 괴로워 했던 산갈대

툭툭 매디를 꺽는다.

 

내, 지난 봄이 저랬던가

저처럼 작고 조용한 빗방울에 얹혀

쓰거운 나이를 버리면

내 굽은 그림자가 끌고온

메마른 마음 햇솜처럼 부풀어

꽃망울 벙그는 세상을

혼자는 갈 수 있으리

 

내 비록 네마음 속에

싹 티울 꽃씨 하나 묻어두지 못한

붙임의 세월을 살았다 하더라도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