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Full Moon) 2020. 4. 1. 09:02

 

 


술 문화

                                   

 

엊그제의 일이다. 모처럼 친구들과 술을 한잔 하게 되었다.

어느정도 술이 거나해지자 2차를 갔고, 또 3차를 갔다.

중간에서 나와 버리고 싶었지만 그동안 중간에 나온 전과가 많아

「산토끼」라는 별명을 갖고 있어서

근래에는 어거지로 따라 다니다시피 한다.

 

그 말이 그 말인 잡담을 나누면서 시간을 버리고,

돈도 버리면서 보내는 것이 좀 안타깝다고 여겨왔고,

또 전과 달리 체력에 한계를 느껴

중간에 슬거머니 나오는데 그것이

「좋은 친구」의 항목에서 빠진다고 해서 끝까지 버텼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화장실에서 웩웩 토하는 일이 생겼다.

인사 불성이 된 친구 두명을 여관에 투숙시키고

집에 돌아오니 벌써 새벽 2시다.

그래도 이는 전보다는 한결 나아진 셈이다.

모이면 떼거리로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술을 마시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공연히 친구들끼리 서푼어치도 안되는 재력 권세를 가지고

시비가 붙어

안주그릇이 비행접시처럼 나는가 하면

술병이 유도탄이 되어 이곳 저곳으로 튀었다.

 

야외 유원지에 나가면 지금도 여전히 남녀가 엉겨

고성방가에 고스톱을 하고, 한쪽에서는 엎어져 자는 사람,

주변 사람과 시비가 붙어 한바탕 치고 받는 싸움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본다.

 

우리의 음주문화는 왜 이렇게 천박하게 됐을까.

개인 하나 하나를 놓고 보면 다들 심성이 곱고 착한데

이것이 집단화하면 부도덕해 진다.

이는 나의 잘못을 군중심리에 얹어 발산하다보니

조직 또는 사회가 타락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왜 술인심은 그렇게 후할까.

필자는 이를 오도된 「기분 정신」 으로 진단한다.

오죽 못나게 자라왔으면 술한잔으로 위세를 부리고

너도 한잔 나도 한잔을

군가의 후렴처럼 외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 상대방이 취하면 실수를 할 것이고,

그래서 이를 즐기자는 심술 근성도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도

진단해 본다.

우리는 흔히 술 못하는 사람을 바보 취급한다.

사람이 다 똑 같을수 없듯이

술을 사이다 마시듯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술병 곁에만 가도 반은 취해 버리는 사람,

알레르기 두드르기가 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도 술 잘마시는 사람 곁에

술못하는 사람이 우연찮게 앉다보면

병신 취급 당하기 딱 알맞다.

 

술꾼의 주정을 다 들어 주면서

술 못하는 죄인에 병신 취급을 받는 것이다.

술을 1차에 이어서 2차를 가지 않는다고

도망병이라는 핀잔을 받는 풍토.

본인이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모임을 외면 당하는 좀팽이 인생에

고리타분한 인간이라고 비난을 받는 현실.

그중에 어느 친구는 술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동료 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을 가지고

술 한잔 안산다고

「짠물」「소금」이라는 구두쇠 취급을 받는다며

억울해 하는 것을 보았다.

그 자신 그들로부터 술 한잔 얻어 먹은 적이 없는 데도

술 한잔 안산다고 비난 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술은 조직체계를 유연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공적으로 하지 못하는 일을 술자리에서

부드럽게 처리하는 매력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공적인 일의 전부로 인식된다면

본말이 전도된 가치관을 낳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술 잘먹고 놀기 잘하고

넉살좋은 사람이 가장 우수한 조직원이 된다는

역설도 가능하게 된다.

 

대학사회에서 갓 입학한 학생을

신입생 환영이랍시고 술을 어거지로 먹이고,

이를 이기지 못한 학생이 끝내 숨지는 사고가

해마다 입학시즌에는 계절병처럼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잘 마시기 때문에

신입생도 잘 마셔야 한다는 논리는 보통 어거지가 아니다.

 

서양 속담에서 보듯

술이란 정갈하고 우아해야 생명력이 있다,

술은 절제를 최상의 덕목으로친다.

술 많이 하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얼마나 품위있게 마시느냐가 야만성과 구분된다.

술은 스스로 양을 재서 마시는 것이 진정한 술꾼이다.

 

술로 상대방을 유혹하고

술로 근심 걱정을 달랜다는 것이 도피자의 태도일 뿐

진정한 음주자세라고 볼 수 없다.

폭탄주 역시 술을 학대하는

폭력행위 라는 지적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이계홍: 서울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