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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깨끗한 방

온달 (Full Moon) 2020. 4. 30. 11:06




낡고 깨끗한 방

                          우 대 식 

 

 

강원도 산간

낡고 깨끗한 방안에 들어 윗목에 놓인

멍석이며 멧방석이며 홍두께를 바라보다.

내 할머니며 어머니의 쓸쓸한 죽음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고양이 발목을 적시던 빗물도 가끔

창호를 두드리다 문득 눈물처럼

번지기도 하는 것이다

황매화, 백매화 우드커니 비를 맞는

만춘(晩春)의 먼 뜨락,

불두화 아래 지나가는 뱀처럼

나 죄가 많다

연당, 연하, 에미, 자미원, 별어곡, 나전, 여랑, 구절

석탄으로 멱을 감은 태백선 간이역

슬픈 향가는 내몸에 박혀

목어(木魚) 배지느러미 아래 앉아

흐린 발등을 닦아 보기도 하는 것이다

 

따뜻한 이 방안에 누워

먼 바다 집어등을 켜든 한 척의 배가 되어

망망대해의 어지러운 꿈속을

헤매다 돌아오곤 하는 것이다

어미 잃은 검은 고래가 되어 등을 지지며

낡고 깨끗한 방안에 누워 있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