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근이
석현수
어르신은
예순을 넘어야 듣는 존칭이다
좀 쉬어도 허물이 되지 않는
뒷짐 지는 자들이다
나는 쉰둘의 나이에
뒷짐을 졌다
손이 뒤로 잘 돌아가지 않았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정쩡한
‘젊근이’가 되었다
그렇게 일찍 물러나다니
무슨 직장이 그러냐고?
아랫도리 힘 풀어지면 물러나야 하는 곳이 있지
쉰둘이 되던 해 조국은 나에게 말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박수칠 때 떠나라”라고
감독의 사인이 오기가 무섭게 바로 직구를 던졌다
대단원의 막은 내리고
낙향 선비 기분으로 고향으로 돌아왔지
문화강좌는 도시마다 있고
주관은 구청이다
붓글씨, 구연동화, 닥종이 접기 등등
붓글씨가 좋겠다 싶어
들여다보니 모두가 어르신들 아니면 아줌마들 뿐
‘젊근이’는 없었다
다시 노인정을 기웃거려 보았다.
물주전자 당번이라도 할려면 환갑은 넘겨야 한다
고령화를 피부로 느낀다
산에 가도 아직 얼굴이 너무 곱다
누가 뭐래도 실직자 모습이다
정년퇴임자란 설명을 부쳐도 피식 웃는다
벌건 대낮에 배낭지고 집 나서는 사람
실직자라는 건 누구나 안다
쉰둘 나이를 위한
‘젊근이’놀이터는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그리던 황홀한 퇴직생활은
신기루처럼 실체 없이 멀어져 갔다
빨간불이 들어왔다. 몇 줄 자막이 흐른다
“구하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몸값을 낮추어라
눈높이를 낮추어라 무엇이든 잡고보라
잡다한 훈수들이 많았다
간신히 부름을 받았다
나는 낙하산이 아니라고 주장 했지만
모두가 나더러 낙하산 이라 했다
‘갑’이‘을’이 되어 오지에 착지를 했다
주위에서 나를 길들이고 있다고 귀 뜸 해 주었다
그냥 한두 달 정도 해 묵은 섭섭함이나 털고 말겠지
그러나 힘 빼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해를 넘기고 또 두 해를 넘겼다
무슨 살 섞인 사람처럼 못 살게 했다
나랏돈 가지고 사업하면서 같은 물에 놀던 사람
모질게 물 먹일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
익숙지도 못한 첫 사회생활
먼저 득도한 사람들 틈새에
비싼 수강료 내고 인생수업 많이 했다
‘젊근이’는 아직도 쉰다섯도 넘기지도 못한 채
얼굴엔 핏기가 남아있었다
빨리 늙는 방법이 없을까?
개인회사에 들어갔다
그동안 귀 동양 했던 것 우려먹었다
듣고 배운 것 못 써 먹었던 것 모두 털었다
영어가 그렇고 경영이 그렇고,
세상엔 영원한 직장은 없단다
회사란 곳은 꿈도 짧고 성취도 짧다
이런 저런 단물 좀 빠지고 나면
슬그머니 대접이 헤퍼지기 시작한다
곧 자리를 비워줘야 하나
아직도 예순 문턱에 머무르지 못했는데
이놈의 썩을 세월 어지간히 더딘 걸음이로군
나이 먹길 학수고대하는 사람
정신 나간 사람이지
아무리 바보 천치라도 빨리 죽는 다는데 좋다니?
사회적 눈총 없이 떳떳하게 쉴 수 있는 나이
당신은 누구냐고 질문을 받지 않는 나이
쉴 수 있는 공인된 자격
환갑을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아! 드디어 해 내었다 나도 예순이다
얼마나 긴 세월을 기다렸던가?
그래 장하다 이 멍청아
그 어려운 예순을 해 내다니
황금 같은 자투리 십년 소진하고도
쾌재를 부르다니 무슨 소견머리야
자기 앞가림 억지 춘향 하는 사이
머리엔 흰 머리가 덥히고
얼굴은 대추씨 빨듯 말라버렸다
이젠 산에 가도 안심이다
성질 급한 친구 몇은 저 세상 떠났다
모진 세월 용케 견뎌났구나
긴 공직 생활 보다 연장전 10년이 더 힘들었다
‘환갑증서’를 수여함
이로써‘젊은 늙은이’때를 간신히 벗었다
10년 세월 공(空) 염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