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 668

서문

책 머리에 에세이(이하 수필) 문학에 입문한 지 강산이 한 번 변했다. 그동안 쓴 수필 문학에 대한 애증愛憎의 비평 글들을 한 곳에 묶어 순년旬年을 기념한다. 책제冊題를 ‘주관적 산문 쓰기’로 택한 것은 수필의 형식에 대한 주장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함이다. 수필이 ‘형식이 없다’라는 무형식 논리에 대한 필자의 반론으로 보아주면 좋겠다. 수필도 여타의 문학 장르, 시나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이 많지 않다. 수필에서도 ‘자기 그리기’ 에 대한 이해를 마치고 나면 나머지 시간 여백은 일반 글쓰기 훈련인 국어 정서법正書法으로 충당한다. 맞춤법, 띄어쓰기, 문장부호, 표준어, 외래어, 오용 언어, 국어순화 등등이다. 드물게 수사법rhetoric을 더하기도 하지만 보기가 드물다. 다행히 에세이에서..

차례

차 례 수필 편 1. 암까마귀 수까마귀의 논쟁. 2. 어중이떠중이가 신변잡기를 쓰다. 3. 성형 시대의 수필. 4. 수필에서의 변화를 말하다. 5. 마당수필에 관한 小考. 6. 수필의 틈새 대중성 7. 붓 가는 대로의 향수 8. 수필에서 단락이 가지는 의미 9. 수필은 주관적 산문형식이다. 10. 삼인칭 수필or에세이 가능할 것인가. 11. 수필의 의미를 어원에서 찾다. 12. 흥미로운 수필이론들 12-1 양잠론 곶감론 12-2 수필로 쓴 수필이론 12-3 아포리즘 형식의 수필이론 12-4 운정의 수필이론 배경 에세이 편 13. Essay의 기원 13-1 『LES ESSAIS (1580)』 Michel de Montaigne 의 서문 13-2 『Essays of Francis Bacon (1597)』Ba..

암까마귀 수까마귀의 논쟁

암까마귀 수까마귀의 논쟁 석현수 수필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숨바꼭질을 그만두고, 냉큼 내 앞으로 나서 본래 너의 얼굴을 보여 다오. 너는 보이지 않으면서 ‘보라, 이것이 수필이다.’라고 외치는 소리만 무성하니 갑갑하여라. 수필이론은 체중 제한 없는 복싱 경기인가? 수필로 평생을 보낸 거목(巨木)도 수필을 말하기도 하고 갓 시작한 신출내기도 이것이다 저것이다 쌈을 가르고 있으니, 지금은 수필 이론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에 살고 있다. 수필에 대한 일가견은 작가 수 만큼이어서 해마다 늘고 있는 수필가만큼 이론도 그 갈래를 더해갈 것이다. 이론 자체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론은 매우 중요하여 제대로 글을 쓰려면 이것을 잘 알아야 한다. 이론을 모르고 실전만 익힌다면 결국 정석이 되지 못하고 꼼수로 전락..

‘어중이떠중이’가 ‘신변잡기’를 쓰다

‘어중이떠중이’가 ‘신변잡기’를 쓰다 석현수 요청을 받은 경우라면 상대를 위해 따끔한 촌철살인의 글 평이 필요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때는 글쓴이를 얼굴을 세워주는 칭찬 일변도의 자세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본다. 못 쓴 글도 있어야 잘 쓴 글이 돋보인다. 부족한 글이라도 이 분야에 자라날 풀뿌리로 여긴다면 어떠할까? 수필의 저변 확대라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은 또 어떨까?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오는 손님은 불청객이다. 백악관에서 열린 인도총리 국빈 만찬장에 불청객으로 나타나 만찬을 한 부부는 "백악관에서 미 대통령 부부와 국빈만찬을 하는 영광을 누렸다."는 글과 사진을 유포했다가 망신살이 뻗쳤다. 있지 않아야 할 곳에 나타난 불청객 때문에 미국 정가가 떠들썩했다. 인터넷에서 댓글은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한다..

성형시대의 수필

성형시대의 수필 석현수 남의 글을 인용하는 것을 삼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문제는 이를 넘어 남의 글을 훔쳐 와 꺾꽂이하거나 접붙이기를 해서 자기화하는 일이다. 이러다가는 문학에서 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자연산 작품을 찾기 어렵게 될 것이다. 어딜 가도 자연산을 보기 어렵다는 말 한마디로 입방아에 올라 애를 먹은 사람이 있었다. 툭하면 뜯어고치고 갖다 붙이니 모든 얼굴이 비슷비슷해져 미인의 기준도 흔들릴 판이다. 그는 성형 세태를 잘못 꼬집다 여성 비하라는 덫에 걸려 사과도 하고 여론의 매를 모질게 맞았다. 글쓰기에서도 별반 다를 바 없다. 한 해의 총결산인 신춘문예의 작품들을 보아도 그 글이 그 글이어서 정형이나 한 듯 엇비슷하다. 길이가 긴 수필에는 시詩보다 더욱..

수필에서의 ‘변화’를 말하다.

수필에서의 ‘변화’를 말하다. 석현수 변화에 인색한 모든 것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창조적 의지가 결여된 상태이고 대중의 기대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머물러 있는 것은 곧 썩는 것을 의미한다. 운정은 때로는 진리라 생각하는 것마저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변화’에 대한 생각까지도 언제든지 다른 이의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일 자세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서만 창조적 발전을 할 수 있다. 1. 운정이 주장하는 변화 방법 ‘변화’에 대한 방법은 전위적이면서도 점진적 변화의 아방가르드 식이다. 또한 비판과 극단적 무시보다는 새로운 문학을 구축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메타를 택하고 있다. 가. 아방가르드 수필 Avant-Garde는 19세기 말과 20세기..

마당수필에 관한 小考

마당수필에 관한 小考 석현수 ‘수필의 변화’ 가운데 마당수필에 이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수필과 마당은 어떤 연관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마당수필은 마당놀이와 수필의 합성어일 것이라는 가정에 따라 마당수필의 개념을 추론해 보고 앞으로 실행 가능성이 있을 것인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1. 수필 쓰는 이는 늘고 시와 소설이 대중과 멀어져 가는 경향이 있음에 반하여 수필만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으며, 반대로 수필만이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고 자조 탄식하는 수필가들의 푸념 또한 설득력이 없다. 수필이 중심 문학이든 변방 문학이든 간에 이러한 것을 차치且置하고라도 최소한 외형적으로는 수필문예지와 수필동호회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도서관이나 주민 센터, 백화점 등 어지간한 곳이면..

수필의 틈새, 대중성에 대하여

수필의 틈새, 대중성에 대하여 석현수 수필의 대중화를 위해 수필에서 틈새Niche와 대중성Kitsch을 생각해 본다. 글의 문턱이 너무 높아 독자가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가정 하에 수필의 문턱을 내려 보자는 주장이다. 수필의 본령本領을 그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필도 대중성을 담아낼 수 있어야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수필은 미래 문학이라고 했다”(Anatole France 1844. 4.16. ~ 1924. 10. 12.) 수필이 문학의 중심에 서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것은 모두 수필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다른 표현이다. 수필이 미래 문학이 되거나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은 말로써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수필도 시대 조류에 맞게 변..

‘붓 가는 대로’의 향수

‘붓 가는 대로’의 향수 석현수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니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이 말만큼 많이 들어 본 것이 없다. 좋은 뜻에서가 아니라 이것이 틀렸다는 전제하에 글 쓰는 이들을 계몽하기 위한 목적이어서 목소리도 높았고 표현도 거칠어 귀에 못이 박여있다. 이젠 안심하여도 좋다. 사람도 가고, 세월도 갔기에 지금은 아무도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란 말은 이미 죽은 말〔言〕이다. 죽은 말〔馬〕을 두들겨 패기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붓 가는 대로의 참뜻이 ‘아무렇게’가 아니라 ‘자연스럽게’라는 주장이었다니 이미 죽인 말〔言〕을 어떻게 살려내야 하나.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 했던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모두 우리가 배웠던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