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수필에 관한 小考
석현수
‘수필의 변화’ 가운데 마당수필에 이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수필과 마당은 어떤 연관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마당수필은 마당놀이와 수필의 합성어일 것이라는 가정에 따라 마당수필의 개념을 추론해 보고 앞으로 실행 가능성이 있을 것인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1. 수필 쓰는 이는 늘고
시와 소설이 대중과 멀어져 가는 경향이 있음에 반하여 수필만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으며, 반대로 수필만이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고 자조 탄식하는 수필가들의 푸념 또한 설득력이 없다. 수필이 중심 문학이든 변방 문학이든 간에 이러한 것을 차치且置하고라도 최소한 외형적으로는 수필문예지와 수필동호회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도서관이나 주민 센터, 백화점 등 어지간한 곳이면 수필 강좌가 열리고 있어 수필을 쓰는 사람이 전례 없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 읽는 이는 줄고
독자가 수필가 수보다 적은 것이 수필문학이라며 수필을 냉소하는 이들이 있다. 이에 대해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독자가 적은 것은 문학의 공통된 고민사항이지 유독 수필에서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책을 읽는 사람이 적다는 것은 현대생활의 변화된 생활 양상 때문이다. 미디어의 급속한 발달로 TV나 영상매체를 선호하다 보니 눈 아프게 책을 읽기보다는 손쉽게 이미지로 접하고 싶어 하는 경향으로 가고 있다. 삶이 복잡해지고 바빠지면서 독서에 여유를 가지지 못하기에 난해한 것이나 밋밋한 읽을거리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으려 한다.
설상가상으로 수필은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글쓰기라는 제한 때문에 시시콜콜한 신변잡기 수준의 이야기라는 선입견에 독자들은 어지간한 유명인의 글이 아니고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으려 든다.
3. 마당으로 나서야 하는 수필
수필이 번성하기를 바란다면 직접 대중 속으로 뛰어들어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매스미디어의 영상 이미지에 대적할 문학 장르는 수필이 대안이라는 생각에서다.
수필은 다루지 못할 소재가 없고 건드리지 못할 주제가 없다. 미래 문학으로 기대한다면 마당놀이인들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운정은 ‘마당놀이’로부터 ‘마당수필’을 떠올린 것임이 분명하다.
마당놀이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독특한 놀이 문화이다. 처음에는 양반들을 꼬집고 비판하는 역기능도 있었지만, 서민들의 힘든 삶을 달래주는 돌파구였다. 한바탕 놀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주는 것이 마당놀이다.
낭만의 자리가 되어 있는 인사동 거리나, 대학로 거리를 떠올리며 나직한 불빛이 있는 카페라도 좋다고 했다. 운정의 말대로라면 어디든 멍석을 펴고 진을 칠 수 있는 곳, 특히 젊은이들이 많은 곳이 그가 나서고 싶어 하는 마당이다.
4. 수필의 유희적 기능
수필 창작이 골방에서 이루어지고 읽기 또한 책상 위에서만 행해지던 순환의 형태에서 마당수필은 독자에게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가는 행위예술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수필도 안방에서 뛰쳐나와 한마당 ‘얼~쑤!’ 하고 어깨를 겯고 신명 나게 춤사위 판을 벌여야 한다.”②
마당놀이는 보는 재미다. 웃고 울리지 못한다면 마당놀이의 의미가 없다. 대중적인 재미를 앞세우고 가치관이나 작품의 교시성은 재미 뒤에 숨어 주어야 한다.
“풍자와 해학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웃고 웃으며 관람하게 하고, 돌아가는 길에도 눈물 나게 우스워-풍자를 통한 해학의 묘미를 재음미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③
만담이나 개그 수준을 넘는 수필이 아니고서야 밋밋한 마당놀이를 보며 누가 울고 웃어 줄 것인가. 대중들을 즐겁게 해 주려면 수필의 문턱도 한층 낮아져야 할 것이다.
5. 수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긍정적인 면)
가. 일인칭의 자기 이야기의 글이라는 한계
‘나’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의 전환은 가능하다. 원래 수필이란 ‘나’라는 경험을 통해 ‘우리’가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나. 경험적이며 진실하여야 한다는 한계
수필에서 ‘허구’를 철저히 배격하던 때도 있었으나 수필의 문학성을 위해 어느 정도의 허구성을 인정하는 추세다. 논란을 피하고자 ‘허구’를 직접 지칭하지는 않더라도 ‘창조적 상상’이나 ‘문학적 허구’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어 마당놀이를 위한 흥미로운 전개가 가능해진다. 문학은 상상력의 폭만큼 감동이 증폭한다.
다.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장르
운정은 짧은 형태의 경구의 글 ‘수필 아포리즘aphorism’을 소개한 바 있으며, 수필과 그림이 만나는 ‘수화隨畵’를 시도하기도 했다. 문학 축제에서는 수필문학 강연을 통해 독자들과 직접 만나고 소통을 하고 있다. 장소가 장마당이라고 해서 수필이 주저할 이유가 없다.
라. 수필의 얼굴은 다양하다.
“수필은 말맛으로 쓰고 말맛으로 읽는다.”④는 말을 떠올리면 수필과 희곡은 자연히 연결고리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수필은 얽매이지 않는 글이어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라면 장마당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남산국악당 마당극 한 편을 관람했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마당놀이로 번안飜案한 ‘십이야’라는 극이다. 원작에서 없는 예상치 못했던 광대의 등장이나 해금, 가야금 소리의 등장은 영락없는 우리의 전통 마당놀이였다. 배우와 관람객이 한데 어울려 ‘얼~쑤!’ 하는 모습은 세계명작과 우리 마당극의 접목 가능성을 충분히 보았다. ‘명작’ 대신 ‘수필’을 대입한다고 해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본다.
6.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부정적인 면)
가. 희곡으로의 변질
마당이란 공간에서 공연이라도 할 수 있는 정도의 글이라면 이것은 이미 수필이 아니라 희곡이란 영역으로 넘어가 버릴 것이다. 시로 쓴 수필이 시가 아닐 수 없듯이 수필로 쓴 희곡을 누가 희곡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나. 새로운 기형아가 될 수 있다.
독자를 의식해 나가다 보면 이는 수필이 가지는 매력도 마당놀이의 흥미도 약해진 하이브리드Hybrid 문학으로의 변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 단락의 문학
장 절의 편성이 있는 소설이나 희곡과 비교하면 수필문학은 단락의 문학이다. 짧은 단락 속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양은 극히 제한적이다. 극화劇化를 위해 수필도 희곡을 닮아가야 한다면 원고지 15매 정도의 수필 분량으로는 소화해 내기 어려울 것이다.
라. 정장 차림의 품바
점잖은 수필이 장마당에 선다는 것은 정장을 차려입은 신사가 품바를 하는 모습일 것이다. 마당극의 말투로 시종하거나 이기죽거리는 사설로 어깃장을 놓는 문장을 사용한다는 것은 품위를 앞세우는 수필의 격格에 맞지 않을 것이다. 정적이면서 관조의 문학인 수필에서 장마당 효과를 기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7. 마당수필의 재해석
수필이 가지는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를 살펴본 결과 긍정적인 면도 많지만, 부정적인 면 또한 만만치 않다.
필자는 운정의 ‘마당’을 장소 개념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당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에 주목하였다. 마당의 상징성은 ‘열린 곳’이란 의미다. 수필이 마당놀이에서 빌려 쓰고자 하는 개념은 마당이 가지는 낮은 문턱이며 배우와 관객이 같이 어울리는 모습이다. 열린 수필, 대중적인 수필, 재미와 유머가 있는 수필, 쉽게 읽을 수 있는 수필, 독자 친화적인 수필의 길을 모색하라는 주문으로 마당의 개념을 재해석하고 싶다.
“수필이란 가장 오래된 문학 형태인 동시에 가장 새로운 문학 형태요, 아직도 미래의 문학 형태이다.”⑤ 수필은 문턱을 최대한 낮추어 독자에게 재미와 흥미를 같이 제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미래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이 있다. 마당수필과 장마당 효과는 지루하고 식상해 하는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청량감을 주며 작가들에게는 충분히 새로운 실험수필의 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제한 요소들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확대 연구로 절차와 방법을 구체화시킨다면 마당수필의 실체를 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주註
① 석현수 <수필에서 변화를 말하다>(수필세계사 출판, 2011 가을 호)
② 윤재천 『퓨전수필을 말하다』, (서울: 소소리, 2011) 27쪽
③ 윤재천 위의 책 25쪽
④ 손광성 『손광성의 수필 쓰기』 (서울: 을유문화사, 2009) 22쪽
⑤ 윤오영 『수필문학 입문』 (서울: 태학사 2001) 159쪽
『서라벌 문예, 문학의 뜨락』(2012)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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