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에서 단락이 가지는 의미
석현수
산문은 단락의 형태를 가진다. 수필은 산문 문장이다. 따라서 수필 쓰기는 단락의 형태를 이루어야 한다. 수필이 산문의 하위 개념인 이상 산문의 주된 형식인 ‘단락의 문학’이라는 형식을 따라야 함은 두말한 여지가 없다.
수필은 산문이라고 하면서 시를 닮은 운문 수필을 써 보겠다는 시도는 일종의 문학의 연금술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지나친 욕심은 작가들을 미망(迷妄)에 빠지게 한다. 시에는 연과 형이 있다면 산문은 단락으로 구성된다. 단락은 주제를 전개하는 기능과 글의 분량(규모)을 가늠할 수 있게 하며, 이야기의 질서를 잡아주는 길잡이가 된다.
1. 운문과 산문
운문이 리듬을 주로 하여 반복성(repetition)의 원리에서 짜나가는 것임에 반해 ①산문은 변용의 논리에서 서론 본론 결론이나 발단 전개 대단원 등과 같은 구성 방법을 가진다. 운문은 대체로 ‘비범한(extra-ordinary) 언표 형식(言表形式)을 지향하는 데 반해 ②산문은 평범하거나 일상적인 언술(言述)이다. 운문이 모호성(ambiguity)을 살리는 중에 고도의 환기(喚起)를 꾀하고 매혹 감을 안겨주지만 ③산문은 명료성(clarity)을 살리는 양식이다. 운문은 최소의 단어로써 최대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압축미를 생명으로 삼지만 ④ 산문은 특정한 개념을 표현하기 위한 글이다. 대체로 ⑤산문은 단어·문장·단락·장(章)이나 절(節) 등의 층 승적(層昇的)인 단위로 짜여 있다. 註1)
운문(verse)은 운(韻)과 율(律을) 주로 하는 시(詩) 종류가 있고, 산문(prose)은 수필, 소설, 희곡 등을 말한다. 운문이 행과 연으로 이루어졌다면, 이에 반해 산문은 단락으로 형성되어있다. 시는 압축의 원리를 따르지만, 산문은 축적의 원리를 따른다. 시를 캔 압축기로 압축하는 것에 비유된다면 산문은 탑을 쌓아가듯이 쓰는 글이다.
2. 단락이란 무엇인가?
“낱말이 모이면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이면 단락이 만들어진다. 단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뜻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른 단락들과 어울려 한 장(章) 혹은 한 편의 글로 이루어 나간다.” 註2)
"단락은 주제 전개를 실현하는 분절적 구성단위로 보면 된다. 곧 소주제에 의하여 마무리 진 작은 덩어리들로 ‘문단·대문’이라고도 한다." 註3) 단락은 산문 문장 구성의 리듬이며 긴 문장에서 율동감을 준다. 산문에서 문장의 변화와 입체감을 자아내면서 또한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다.
“단락은 내부적으로 살펴보면 작가가 생각하는 사색과 사고의 기초 단위가 된다. 단락을 토막글이라 부르는 이유도 작가의 생각이 하나의 매듭으로 묶어진 단위이기 때문이다. 단락은 생각의 기본 단위로서 길이와 내용이 그때그때 다르다. 단락이 너무 작으면 개수가 많아져 내용이 쪼개질 우려가 있으며, 너무 크면 개수가 적어져서 내용이 뒤섞이게 된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글의 목적에 맞추어 단락을 나누고 있다. "수필에서 단락은 보통 3~8문장으로 구성되며 도입문, 뒷받침 문장, 마무리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 註4)
3. 단락의 전개와 배열의 의미
단락의 종류는 문장이 놓이는 위치에 따라서 구분지기도 하고, 구성상 무슨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기능성으로 구분지기도 하며 때로는 길이로써 구분하기도 한다. 보편적인 방법으로 ‘기능상’의 구분을 많이 하며, 이는 ‘주제 전개의 방식’ 그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능상’에 따른 구분으로 형식 단락과 의미 단락으로 나누는 경우도 있다.
단락을 배열하는 방식이 곧 ‘주제의 전개법’이요 그것은 ‘소재의 배열법’이 되겠다. ‘배열’이란 각 단락의 내용을 헤아리고선 그 배치의 모양새들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적·공간적인 순서, 일반·특수, 원인·결과, 내부·외부, 알음·모름, 원인·결과의 순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배열 방법이다. 여기서는 문제·해결」의 순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주 적용하는 귀납법적 전개와 연역법적 배열, 그리고 점층적 순서만을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가. 「구체→추상」의 순서
귀납법적 전개다. ‘특수→일반’과 비슷하다. ‘구체’와 ‘특수’가 언제나 일치하지 않다는 데서 따로 세운 가름이다. 구체적 사례를 들고, 거기에 깃들이는 이법·원리를 펴는 이론적 문장 -논설문·설명문·평론문-에 많이 쓰이는 전개법이다.
나. 「추상→구체」의 순서
연역법적 배열이다. 일반적인 설명문에서 흔히 쓰인다. 두괄식 문장이나 쉬운 문장을 겨냥할 때 잘 쓰이는 구성법이다.
다. 점층적 순서
‘중요도의 순서’다. 절실하지 않은 것에서 절실한 것으로 옮아간다. 최후야말로 그 문장의 노른자위라는 관점에서의 구성법이다. 요긴한 것을 먼저 앞에 들면 그 뒤엣것엔 흥미도 주의도 여리어져 버린다. 註5)
4. 단락의 기능
수행하는 역할에 따라 주제 단락, 기능 단락, 내용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주제 단락은 주제를 형성하는 내용을 담는 것이다. 주제 단락이 너무 길면 나눌 수 있고, 짧으면 보조 단락이 덧붙여지기도 하므로, 결국 여러 기능의 단락들이 뒤섞이게 된다. 기능 단락은 글의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문맥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직접 주제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글의 전개를 도와주는 기능 단락은 사람의 인체를 비하면 관절과 같다. 내용 단락은 온전한 하나의 내용을 지닌 단락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읽어가는 과정에서 적은 수의 뜻이 점점 뭉쳐져 주된 내용 단락이 된다. 註6)
5. 수필이 단락의 문학이기에
가. 수필을 산문답게 쓰라는 주문이다.
운문형식으로 산문을 쓰기는 불가능하며, 산문형식으로 운문을 쓰기도 불가능하다. 만약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면 장르의 구분을 다시 해야 한다.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문장 형태를 ➀ ‘운문’, ➁ ‘산문’, ➂ ‘운문이기도 하고 산문이기도 한’ 세 가지로 분류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시를 빼닮은 수필과 수필을 빼닮은 시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시이면 운문에 그쳐야 하고, 수필이란 소리를 들으려면 산문의 경계를 넘지 말아야 한다. 수필이 장르를 넘어간다면 이미 이것은 산문이 아니라 ➂ ‘운문이기도 하고 산문이기도 한 가상의 장르로 넘어간다. 불행하게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➂의 문학 장르는 아직 없다.
나. 수필이 가지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한 편의 글에 하나의 주제가 있듯이 하나의 문단에도 하나의 작은 주제가 있다. 기본적인 중심 생각이 모여 글 전체의 주제를 받쳐준다는 뜻에서 소주제라고 부른다. 소주제를 다루는 문장이 단락인 셈인데, 그것이 불분명하면 단락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작은 단락은 작은 주제들로 구성되어 뒷받침하고 있으며, 큰 단락은 작은 단락들이 받쳐 올려줌으로써 큰 단락의 주제를 살려준다.
수필을 운문같이 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필을 시 형태로 쓰고 싶어서 단락 대신에 시의 구조적 특성인 ‘행과 연’의 형태를 취한다면 이는 곧 긴 시를 써 놓고 짧은 수필이라고 부리는 억지다. 단락이 산문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단락의 형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짧은 글들을 수필로 보아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에 대한 논쟁이나, 이론가들이 원고지 13매에서 18매가 적당한 수필 분량이라고 제시하는 이유도 최소한의 단락의 구성을 염두에 둔 산문 형태의 글을 수필에 주문하기 때문이다.
다. 글의 형식을 제시해 주고 있다.
산문은 머리와 몸통 그리고 꼬리 부분을 가진다. Winston Churchill은 에세이 글쓰기 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 생각을 써 내려가라, 그리고 내가 쓴 것이 쓰고자 했던 것인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Say what you are going to do; do it; say what you have done)”註7
산문은 운문보다 의사전달이 명료해야 한다. 시에서 이렇게 생각해도 되고 저렇게 생각해도 되도록 하는 것은 문학의 묘미라며 칭송을 받을 일이다. 그러나 산문에서 좋다는 것인지 싫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애매모호 글을 썼다면 이는 분명 자기 생각이 부족한 작가 취급을 받을 것이다. “자신이 심오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명료해지려고 애쓰고 자신이 심오한 것처럼 보이고 싶은 사람은 모호해지려고 애쓰게 되어있다.”註8)
긴 글에는 시작과 마무리가 있어야 하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거두절미하고 들이대거나 중얼거리듯 여운을 남기며 종지부를 찍는 것은 산문 쓰기가 아니다. 단락은 주제를 전개하는 기능과 글의 분량(규모)을 가늠할 수 있게 하며, 이야기의 질서를 잡아주는 길잡이가 된다. 수필은 무형식이 아니다. 3단락, 여러 단락의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수필의 형식을 ‘무형식’ 또는 ‘무형식의 형식’이란 말 대신에 수필 문학은 ‘주관적 산문 형식’註9)이라고 굳이 형식을 밝혀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註1)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국어국문학자료사전』 (서울: 한국사전연구사, 1999) pp. 1408-1409.
註2) 박양근 『좋은 수필 창작론』 (전북: 수필과 비평사, 2004) p.195 <단락의 개념>.
註3) 장하늘 『글쓰기 표현사전』 (서울: 다산 북스, 2009) p.128.
註4) 박양근의 위의 책 p.196.
註5) 장하늘의 위의 책 p.128 요약.
註6) 박양근의 위의 책 pp.197~198 요약.
註7) A.P. Martinich, 강성위/ 장혜영 역
『철학적으로 글쓰기 입문』 (서울: 서광사, 2007) p.80 <철학적 에세이의 구조>
註8) A.P. Martinich 앞의 책 p.15.
註9) 이우경, 『한국 산문의 형식과 실제』(서울: 집문당, 2004) p.4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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