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주관적 산문 형식이다.
- 무형식의 형식을 반론하여
석현수
수필 문학(이하 수필)의 형식을 무형식의 형식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형식이 없다고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무형식도 형식이라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얼마나 어려운 말인가? 아니면 우스운 말인가? ‘무형식의 형식’을 대신할 다른 표현은 없을까? 수필에 제대로 된 형식의 옷을 입히고 싶다. 수필도 분명한 형식이 있으니 이는 곧‘주관적 산문 형식’이라 하고 싶다.
1. 수필은 형식이 없다
수필의 '무형식의 형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몽테뉴와 베이컨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몽테뉴가 16세기 말에 그의 수상록을 '에세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냈을 때,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한 새로운 종류의 문학을 만들어 냈다.
원래 ‘에세이’의 어의는 ‘실험하다’의 뜻이 있다. '에세이'는 우리가 말하는 수필서부터, 논설, 수상, 여행기, 비공식적인 문예비평까지를 널리 포괄하는 종류의 글이었다. 서구의 각 민족의 문학사, 특히 영문학사에는 소설, 희곡, 시의 세 장르 중 어느 것으로도 분류될 수 없으나, 영어와 영국인들의 문학사에서 버릴 수 없는 수많은 산문작품이 포함되는 작품을 에세이로 분류하였다.
지금도 모든 사전에는 수필의 형식을 일제히 ‘무형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수필에 대한 서구적 해석을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수필에 대한 정의는 사전마다 조금씩 달리하고 있으나 ‘무형식’에서는 모두 같은 견해를 보인다.
2. 사전적인 설명
『한국어 대사전』
수필이란‘형식에 묶이지 않고’듣고 본 것, 체험한 것, 느낀 것 등을 생각나는 대로 쓰는 산문 형식의 짤막한 글. 사건 체계를 갖지 않으며 개성적, 관조적, 인간성이 내포되게 위트, 유머, 예지로서 표현함. 상화(想華), 만문(漫文), 만필(漫筆), 수필 문, 에세이로 부른다.
『세계 문예 대사전』
수필은 일반적으로 사전에 어떤 계획이 없이 “형식의 구애를 받지 않고” 자기의 느낌, 기분, 정서 등을 표현하는 산문 양식의 한 장르이다.
『국어 국문학 자료 사전』
수필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명할 수 있다. 첫째, ‘수필은 무형식의 자유로운 산문’이다. 그것은 수필이 소설이나 희곡과 같은 산문문학이면서도 구성상의 제약이 없이 자유롭게 Tm는 산문임을 말한다.
3. 작가들 견해도 다르지 않다.
수필이 무형식이라는 것은 한두 사람의 실수로 잘 못 내린 정의가 결코 아니다. 문예사전은 물론이고 많은 수필이론서에서도 거의 모두 무형식으로 규정지어놓고 있다.
김광섭
그의 글 <수필의 문학적 영역>에서 “형식으로서의 수필 문학은 무형식이 그 형식적 특징이다. 이것은 수필의 운명이고 내용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김진섭
「수필의 문학적 영역」에서 수필에는 “일정한 형식이 없고” 또 모든 것이 수필의 재료가 될 수 있는 동시에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데에 수필이 횡행 발호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4.무형식이 수필 문학에 미치는 영향
“문학의 형식은 장르를 결정해 주며 문학의 기능이 바뀌면 형식도 변한다. 문학의 형식이 문의 예술성과 미를 결정해 준다”註1) 장르는 곧 형식이다. 장르(genre)의 사전적 의미는 문학, 문학, 예술에서의 부문, 종류, 양식, 형(型) 따위에 따른 갈래를 뜻하고 있다. 수필에 형식이 없다는 말은 곧 문학 장르가 아니라는 강한 자기 부정의 함정이 숨어있다. 그러므로 ‘무형식’ 이면 수필은 문학 장르에 들어서지 못한다. 수필이 문학이 아니면 자동으로 수필가는 문학인이 아니다. 수필이 무형식이라면 우리는 지금 시, 소설, 희곡 세 장르로만 분류하던 중세기로 회귀하고 있는 셈이다. ‘형식’이 없으면 문학 수필은 결국 여기(餘技)요, 잡기(雜記)요, 영어로는 미셀러니(miscellany)가 되어 문학 반열에 오르지 못한다. 수필에 대한 이론이나 수필 평론은 마저 모두 잡설(雜說)이란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5. 이웃(시와 소설) 장르의 형식은 무엇인가?
문학은 내용과 형식에 따라서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며 각기 독특한 미감과 기능이 있다. 여기서는 형식과 종류를 편의상 혼용하도록 하겠다. 문장 형식은 크게 운문과 산문으로 구분되고 운문은 서사시, 서정시, 희곡 등으로 발전되었으며 산문은 토의 적 문학으로서 역사, 철학, 웅변 등으로 발전해 왔다. 형식에 따른 분류는 학자마다 다르나 다음과 같은 구분을 한다. “이병기는 문학의 형태를 시가와 산문으로 나누어 2분법으로, 장덕순은 서정적, 서사, 극적 양식으로 나누어 3분법으로 분류했다. 조윤제는 시가, 가사, 소설, 희곡 등 4분법, 조동일은 서정, 서사, 희곡, 교술 등 4분법을 제시했다.”註2)
● 시의 형식 :
“시는 운문이라는 형식” 註3) 을 취하고 있다. 시는 서구에서 원래 창작문학을 포괄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시의 영어단어 'poem'은 그리스어 ‘창작하다’의 poiesis에서 온 말이다. 시는 운문적, 축약적이다.
●소설의 형식:
소설은 “허구를 통한 산문적인 문학 형식” 註4) 이다.
소설은 허구적 산문으로 된 긴 길이의 이야기로, 이 속에서 현실적 삶을 대표하는 인물들과 사건들은 다소간 복잡하게 얽힌 구성에 따라 그려진 것이다. 대체로 길고 복잡한 산문형식의 이야기로 연속되는 사건들을 통해 인간의 체험을 다루게 된다. 삶과 성격의 다양함을 그리고자 하는 뜻에서 상상적인 인간들의 모험이나 감정을 다루는 허구적 산문 담 등과 같은 것이다.
6. 수필의 형식은 주관적 산문형식이다
유독 수필만 ‘무형식’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책임하다. 이는 수필을 주변 문학으로 전락시키는 구실을 만들 수 있다. 수필의 형식은 문학 장르로서의 자격일 뿐만 아니라 장르를 특징짓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서구 ‘에세이’에서 묻어온 ‘무형식’이란 표현을 지금까지도 떨치지 못함은 우리 수필 문단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무형식’은 그 형식이 너무 다양해서도 아니며, 무형식이 곧 하나의 형식이 됨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형식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의 경우 “시는 운문과 창작이라는 형식”이라고 했으며 소설은 “허구를 통한 산문적인 문학 형식”으로 했다. 그렇다면 이에 맞갖은 수필의 형식을 찾아서 바로 잡아 주자. 전술한 바와 같이 수필은 ‘주관성’과 ‘산문성’이 혼융된 구성이다. 주관성은 같은 산문에 속한 소설 장르의 허구성과 구분 할 수 있고, 산문 성은 시 장르의 운문성과 대척점에 있게 된다. 따라서 수필은 ‘주관적 산문 형식’이라 불러야 제대로 제 자리를 찾는 것이다.
註1) 최재서 『문학원론』(서울 春潮社 1957) p.383
註2) 이우경, 『한국 산문의 형식과 실제』.(서울 집문당, 2004). p. 15.
註3) 정진이. 『문학비평용어 사전』.(서울 새미 2006 ) <시>
註4) 이정자, 『글쓰기의 길잡이』(서울 새미 (2005) p. 14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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