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주관산문(2022)

수필隨筆의 의미를 어원語源에서 찾다

온달 (Full Moon) 2022. 5. 3. 14:32

 

수필隨筆의 의미를 어원語源에서 찾다

 

석현수

 

隨筆수필의 한자음은 隨 :(때때로) 수, 筆: (쓸, 적어둘) 필이다. 아울러 ⑦‘붓 가는 대로’란 의미의 따를 수隨, 붓 필筆 은 한자어에서 올바르게 뜻을 차용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동양권에서 수필의 처음 시작은 중국의 경우 홍매洪邁 A.D. 1202, 일본은 세이 쇼나곤淸少納言 A.D. 1000,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박지원 A.D. 1780부터이다. 이름하여 수필隨筆의 창업자로 삼은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글을 수필이라 이름하였다.

 

 한문 문화권에서 중국. 일본, 한국은 모두 같은 단어를 쓰고 있기에 의미가 다를 수 없다. 단지 용어 풀이를 달리하기 때문에 이론異論이 발생하여 상호 간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용어의 정의는 곧 글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는 일이 될 것이므로 소홀히 다불 문제가 아니다. 홍매. 세이 쇼나곤. 박지원이 쓴 글을 직접 살펴보기로 한다.

 

1. 중국 홍매의 수필 개관

 

  가. 지금까지 수필의 효시는 중국 남송 때 홍매( 1123∼1202)다. 그는 고종 효종 광종 영종 등 4대에 걸쳐 관직을 가졌으며 마지막 관직은 제상에까지 이르렀던 인물이다. 달관의 경지에 이른 학식을 바탕으로 뱡대한 저술을 남겼으며 필기집으로 註1)『용재수필容齋隨筆』 (5집 74권)을 남겼다. 40년이란 오랜 시간을 거쳐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그 속에서 알짜만을 골라 편집한 책이다. 용재容齋는 홍매洪邁의 호이다.

 

  나. 예문 보기

 

예문1) 인재는 쓰려는 의지만 있으면 넘쳐가게 마련이다.

이미 사서에 기록된 기재奇才인 고대 정鄭 나라의 촉지무燭之武와 현고弦高는 계략으로써 적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켰던 인물들이다. 그리고 특별한 재간을 가진 인재가 무수히 배출되어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예문2) 할 말과 못할 말을 가리지 못하면 큰 화를 당한다.

역사책을 두루 섭렵하다 보면 말조심을 하지 않아 억울하게 죽음 당한 예가 너무 많다. 한漢의 고조의 경우가 그렇다.

 

예문3). 죄를 덮어씌우려면 무슨 죄명인들 없겠는가

『좌전左傳』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한 사람을 해치우는 데 이유가 없어 근심하는 일이 생겨날까?’ 예로부터 한 사람을 사경으로 몰아넣고자 한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 평가

 

  예문1) 에서는 사서에 기록된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예문2) 에서는 역사책을 두루 섭렵하여서 한 고조를 인용하고 있다. 예문3) 좌전에서 사례를 인용하고 있다. 위 예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홍매의 글은 대부분 독서 초록에 가까워 역사자료들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매사에 해박했던 사대부 홍매는 평생토록 많은 양의 도서를 섭렵하였다. 그러한 그에게는 독서 시 필기하는 좋은 습관이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상이 있으면 그 즉시 기록하곤 하였다 (予老去習懶, 讀書不多, 意之所之, 隨即紀錄, 因其後先, 無復詮次, 故目之曰隨筆). 40여 년간 해온 독서와 기록을 그때그때 정리하고 집대성한 것이 바로 『용재수필容齋隨筆』이다.

 

2. 일본의 세이 쇼나곤淸少納言의 수필 개관

 

  가. 동양 수필 사에 일본의 수필을 검토 대상에서 빠트린 것은 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註2) 서기 1000년 헤이안 시대에 세이 쇼나곤(淸少納言)이 쓴 수필집 『마쿠라노소시枕草子』를 수필의 효시라고 말한다. 중국의 용재수필보다는 100년이나 앞선 시점이다. 그녀가 제목으로 택한 ‘枕草子’는 ‘베갯머리의 글’이라는 뜻이다.

 

  나. 예문 보기

 

예문 1) 사계절마다 정취 (四季それぞれの情趣)

겨울은 이른 아침. 눈이 내린 아침은 말할 것도 없고. 서리가 새하얗게 내린 것도 멋지다. 또 무척 추울 때 불을 급히 피워 숯을 들고 지나가는 모습도 겨울에 어울린다. 오후가 되어 추위가 점점 풀리면 화롯불도 하얀 재가 눈에 띄어 좋지 않다.

 

예문 2) 귀여운 것 (かわいらしいもの)

귀여운 것. 참외에 그린 아기 얼굴. 사람이 쥐 소리를 흉내 내 부르니 아기 참새가 폴짝폴짝 춤추듯 다가온다. 두세 살 정도 된 아기가 막 기어 오다가 아주 작은 먼지가 있는 것을 재빨리 발견하고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집어서 어른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럽다. 단발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머리카락이 눈을 덮었는데도 쓸어 올리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 뭔가를 보고 있는 것도 정말이지 앙증맞다.

 

예문 3) 부러워지는 것 (うらやましいもの)

마음먹고 신사에 참배 갔을 때. 안쪽 경내에 다다른 곳에서 몹시 힘겨운 것을 참아가며 오르막길을 올라갔는데. 전혀 힘든 기색 없이. 뒤에 오는구나 싶던 사람이 휙휙 앞질러 가서 먼저 참배하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생략~ 보통 다른 데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소소한 일이 이때만큼은 당장 그 여자가 되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예문 4) 흥이 깨지는 것(興ざめなもの)

정말로 주인의 임관을 고대하던 이들은 너무 실망이 컸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빈틈도 없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슬며시 자리를 뜨고 만다. 오랫동안 모시어 그마저도 쉽사리 자리를 뜰 수 없는 이들은 내년에 관직이 비는 지방들을 손꼽아가며 숫자를 헤아리거나 하면서 그 주위를 어슬렁어슬렁한다. 그 모습도 처량해서 흥이 깨지지 마련이다.

 

예문 5)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일은 (世の中で一番つらいことは)

세상에서 누가 뭐래도 역시 가장 괴로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는 일일 것이다. 대체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자기는 남에게 미움을 사고자 생각했겠는가. 하지만 자연적으로 일하는 곳에서. 사랑받는 사람과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구분 지어지는 것은 정말로 괴로운 일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의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신분이 낮은 사람의 경우에도 부모가 사랑스레 여기는 자식은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주목을 받고 귀 기울여주며, 귀하게 여겨지는 법이다. 돌본 보람이 있는 자식이라면 부모가 어여삐 여기는 것도 지당한 일이며. 어찌 사랑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여겨진다. 또한 딱히 잘하는 게 없는 자식이라도. 그런 자식을 부모이기에 귀여워하는 마음은 절실히 느껴진다. 부모에게든. 주군에게든 또한 교제가 있는 상대 모두에게.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일만큼 멋진 일은 없을 것이다.

 

  다. 평가

 

 예문1), 2), 3), 4)는 『마쿠라노소시枕草子』수필집에서 나오는 작품 중 일부분이다. 세이 쇼나곤淸少納言이 궁녀로 일할 때 그때그때 생각나는 소회를 적은 글이다. 그녀의 수필집 『마쿠라노소시枕草子』의 연유에 대해 세이 쇼나곤은 이렇게 설명해 놓고 있다.

 

註3)“중궁 ‘데이시’의 오빠가 ‘데이시’에게 종이를 헌상했다. ‘데이시’가 무엇을 쓸까 망설이고 있는 사이 베갯머리 맡에 두시 지요하고 내가 말하자 ‘그렇다면 자네에게 주겠네.’ 하고 종이를 건네주었고. 그 종이에 이러저러한 내용을 적었다”고 밝히고 있다. 마쿠라노소시枕草子는 일어日語로 ’베갯머리 글‘이란 뜻이 있다.

 

 

3.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의 수필개관

 

  가. 우리는 1780년 박지원의 註4)『열하일기』에 나오는 <일신수필馹迅隨筆>을 수필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馹迅隨筆 이란 한자어의 뜻은 馹'(역마)일', '迅(신속할 '신'이니 빠른 말을 타고서도 그때그때마다의 생각을 기록해 둔다는 말이다. 연암이 청나라 열하와 북중국, 남만주 일대를 돌아보며 견문하고 체험했던 일들을 수시로 기록해 놓은 것이 일신 수필이다. 책의 구성은 크게 2부분으로 나누어 1~7권은 여행 경로를 기록했고, 8~26권은 보고 들은 것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지금부터 약 240년 전의 일이다. 이때 까지만 해도 불행하게도 이 글의 원문은 한문 산문漢文散文이다. 필자는 고미숙 선생의 열하일기 번역본에서 예문들을 발췌 수록하였다.

 

  나. 예문 보기

 

예문 1) <일신수필馹迅隨筆> 서序에서 註5) 달리는 말 위에서 휙휙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기록하노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먹을 한 점 찍는 사이는 눈 한번 깜박이고 숨 한 번 쉬는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상권)

 

예문 2) 입과 귀에만 의지하는 자들과는 더불어 학문에 관해 이야기 할 바가 못 된다. 평생토록 뜻을 다하여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학문 아니던가. 사람들은 “성인聖人이 태산에 올라 내려다보니 천하가 작게 보였다.”고 말하면,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부처가 시방세계十方世界를 보았다.” 하면 허황하다고 배척할 것이다. 태서泰西 사람이 큰 배를 타고 지구 밖을 돌았다“고 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버럭 화를 낼 것이다.

 

예문 3)

“중국의 제일 장관은 저 기왓조각에 있다. ” 대체로 깨진 기와 조각은 천하에 쓸모없는 물건이다. 그러나 민가에서 담을 쌓을 때 어깨 높이 위쪽으로 깨진 기왓조각을 둘씩 짝을 지어 물결무늬를 만들거나, 혹은 네 조각을 모아 쇠사슬 모양을 만들거나, 또는 네 조각을 등지게 하여 노나라 엽전 모양처럼 만든다. 그러면 구멍이 찬란하게 뚫리어 안팎이 서로 비추게 된다. 깨진 기와 조각도 알뜰하게 써먹었기 때문에 천하의 무늬를 여기에 다 새길 수 있었다.

 

  디. 평가

 

예문 1) 연암은 이 책을 통해 북학파의 사상을 역설하고 동시에 구태의연한 명분론에 사로잡혀 있는 경색된 당시의 사고방식을 풍자하고 있다. 예문 2) 에서 자신의 글은 달리는 말을 타고 가면서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수시로 기록해 놓았다는 것이라는 뜻이다.

 

 

4. 마무리 하며

 

 

 한·중·일 모두 동일한 한자어를 사용하며 그 뜻 의미 또한 동일하였다. 중국의 홍매(용재容齋)는 독서를 하면서 ‘잊어버리지 않게 수시로 기록’다는 의미(홍매 또한 수시로 짬짬이 적어둔 글이란 의미로 隨筆을, 일본의 随筆(ずいひつ)은 세이 쇼나곤은 베갯머리에 필기구를 두고 생각날 때마다 썼던 글이란 뜻으로 그의 수필집을 『마쿠라노소시枕草子』라도 했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馹迅隨筆일신수필에서 隨筆이란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달리는 말을 타고 가면서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수시로 기록한 것이라고 의미였다. 동양 3국 ( 한·중·일) 모두 동일한 한자어 隨筆수필을 쓰고 있으면서 의미 또한 모두 동일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써 隨筆수필의 한자음의 어의는 註 6)

隨 :(따를) 수, 筆: (붓)필 이 아니라,

隨 :(수시로) 수, 筆: (필기)필의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으니

이런 논거라면 수필은 태생적으로 붓 가는 대로라는 의미를 가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잊지 않게 기록해 두는 비망록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참고도서

① 홍매 『경세 지략(용재수필)』임국웅 옮김 (서울: 넥서스 BOOKS, 2004) 상권 P28, 121, 350

② 마쓰무라 아키라 외· 윤철규 옮김 『절대 지식 일본 고전』

(서울: 이다미디어, 2011) 20쪽 <일본 고전과 역사연대표>

③ 위의 책 503~510쪽 <마쿠라노소시>

④ 박지원 고미숙 외 옮김 『열하일기』(서울: 그린비, 2008) 226~299쪽

⑤ 위의 책 226쪽 <馹迅隨筆>

⑥ 손광성 『손광성의 수필 쓰기』(서울: 을유문화사, 2009) 15쪽 <수시로 기록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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