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들의 효용
석현수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진짜와 가짜들의 경합이 치열하다. 가짜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저마다 명함을 나누어 주고, 현수막을 걸고, 진짜 같아 보이려고 법석을 떤다. “네가 옹가냐? 내가 옹가다! 하고 있으니 뉘라서 까마귀 암수를 알아 보리요?”가짜 옹고집은 관가에서 벌인 송사에서도 진짜 옹고집보다 더 확실하게 집안 살림살이 설명을 해 낸다. 지금 길거리는 『옹고집전壅固執傳』야외 공연을 보는 것 같이 재미가 있다.
소설에서 가짜의 효용은 고약한 진짜를 개과천선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선거판의 가짜들은 백해무익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가짜들은 돈을 씀으로 해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살리는데 일조를 하고 있으니, 현수막이나 유인물의 남발로 인쇄업계가 호경기를 누리게 한다. 아울러 목청을 돋우고 굽실거리는 통에 선거 분위기가 살아나고 투표율도 높아진다. 진짜, 가짜 시비가 없는 선거는 맹물 같아서 무척 싱거워 질 것임에 틀림없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가짜를 대하는 우리들 마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들에게 점령당한 포로 신세이니 가짜에게 고분고분해야 불편하지 않다. 외국 기사에 따르면 짝퉁 기사에 발끈하여 절대로 어느 나라 제품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벼르던 미국 주부들이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고 한다. 들춰보니 옷가지, 신발에서부터 잠자리의 이불보 까지 모두가 저가라는 이름을 단 짝퉁 천국이니 아예 무신경해져 버리는 것이 속이라도 편하다고 했다. 가짜들의 효용을 인정하고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시절이 되어버렸다.
부부관계에서도 요즈음은 가짜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위세가 너무 당당하여 안방극장을 통해 우리들 시선을 묶어두고 있었다. 배꼽을 잡게 한다. ‘김 기사, 운전해 어서~.’라는 코미디가 있었다. 진짜 회장님이 눈코 뜰 정신이 없는 사이, 젊은 부인은 기사와 드라이브를 즐긴다. 진짜는 놓아두고 가짜들이 서로 어설픈 로망스에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가짜들의 행차는 진짜보다 항상 순위에 있어서 우위의 대접을 받는다. 가족과 외식을 가면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 애인과는 안심스테이크에 와인을 마신 다고 한다. 왜 애인은 진짜보다 더 호강을 하는 것일까? 웃으려고 하는 말이겠지만 이미 잡은 물고기에게는 낚시용 떡밥을 다시 뿌리지 않는 것은 상식 아니냐고 한다. 비록 설명이 고약하긴 하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로봇은 가짜인간이다. 이들은 오직 일할 권리만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런 가짜들이 없으면 진짜인간은 무지하게 고생을 해야 한다. 가짜 중에서는 가장 효용이 큰 가짜이다. 이들은 어떠한 조건이나 환경에서도 거뜬히 일 하는 속없는 기계들이다. 공사장 앞에 경광등을 들고 위 아래로 흔들면서 자동차의 서행을 알리는 마네킹을 보라. 만약 사람이 그 자리에서 서서 똑 같은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처음에는 시킨 대로 하겠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휴식이 필요하다고 쉬러갈 것이며 안전모는 귀찮다고 벗어던져 버릴 것이다. 지금은 말없는 로봇들이 진짜 인간을 먹여 살리고 있다. 가짜의 효용이 가장 두드러진 곳이 산업분야이다.
앙드레 지드는 ‘세상에 진리를 발견했다고 하는 사람을 믿지 마라'고 했다. 세상에 진짜는 없다는 말이다. 온통 가짜투성이 속에서 적응하고 살려면 하는 수 없이 가짜의 효용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진짜 다이아몬드 반지나 황금 목걸이를 끼고 다니면 얼마나 불편할까? 그것도 제법 알이 큰 보석이라면 마음이 불안하여 다니지 못할 것이다. 이럴 때 모조품이라도 분위기에 어울리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진짜대접 까지 받는다. 돈 들여 보석반지 끼고 다니다가 손가락을 잃는 것보다는 가짜들의 효용을 빌려 사는 것도 생활의 지혜이다. 이름 있는 명품 가방을 평생에 한번 걸치지도 못할 사람에게는 비록 껍데기만 닮은 가짜로 서민들에게 행복감은 준다. 참 복을 못 가졌으면 유사한 복이라도 찾아서 가지겠다는 인간 군상들의 속내를 가짜들이 모른 척하지 않고 다독여 준다. 이왕 가짜에 기대고 살아갈 세상이라면 이들을 즐겨 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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