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선생출신(2010)

설날 유감

온달 (Full Moon) 2015. 4. 15. 08:20

설날 유감 

 

석현수 

 

장롱 안에 금송아지를 넣어둔들 보여줄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자랑하고 칭송을 받는 것 때문에 소장품이 더욱 소중해 지는 것이리라. 옛날에는 사람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 작은 일에도 칭찬이 자자했으나, 지금은 모두가 여유로워지니 여간 해서 남을 부러워하거나 칭찬할 일들이 흔치 않다.  

 

삼십여 년 전 승용차가 흔치 않던 때는 누구나 차를 가지고 싶어 했다. 그래서 ‘탈것’이라는 뜻의 승용차乘用車라는 말을 쓰기 보다는 ‘내 집 차’ 라는 뜻의 자가용自家用이란 말을 선호했다. 자기 차를 가진다는 것은 성공의 의미도 되었고, 부모님에게는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내게도 맨 처음 차를 샀을 때, 눈에 어른거렸던 것은 부모님의 얼굴이었다. 얼마나 기뻐하실까? 기뻐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며 눈물이 돌았다. 나도 이제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에 가슴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설날이 오면 얼른 고향 가서 골목 안에 떡하니 차를 세우고 오는 이 가는 이들에게 뵈도록 해야지.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성공한 아들 두었다고 우리 부모님을 부러워하겠지. 

 

두 분을 가까이서 뫼 실 겨를도 없이 나는 양친을 여의었다. 아버지는 20년 전에, 아버지 떠나시고 3년 후 어머님마저 떠나셨다. 일찍이 나이들은 고아孤兒가 되어버린 셈이다. 반상위의 감이 먹음직해도 감 좋아 하시던 부모님이 살아계시지 않으시니 가져가도 드릴 분이 없어 그것을 슬퍼했다는 옛 시조가 명절마다 가슴 저민다. 

 

자식 자랑하고 싶어 하고, 칭찬하기를 좋아하시던 부모님, 그 모습은 내가 어리던지 철들던지 간에 늘 같으셨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받아쓰기에 만점을 받고는 학교를 파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가 빨간 동그라미 다섯 개를 내 밀던 일로부터 시작해 그것이 무엇이든 부모님께 제일 먼저 기쁜 소식을 알리고 그분들의 칭찬을 기대해 오지 않았던가. 

 

설 명절을 수 없이 보내면서도 이제는 찾아가 칭찬받을 일이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일 년 내내 쌓인 자랑거리들을 앞세우고 고향 골목을 들어서는 명절 재미가 없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 그 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 드리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 같다. 훗날 부모님께 드릴 칭찬거리를 만든다고 열심히 살아왔더니만 정녕 나를 칭찬해주실 부모님은 세월을 기다려 주지 않고 먼저 떠나신 것이다.  

 

 

 

 

 

'著書 > 선생출신(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인이 바뀌었다   (0) 2015.04.15
성묘 이변   (0) 2015.04.15
베짱이   (0) 2015.04.15
안경   (0) 2015.04.15
하늘이나 알까?   (0) 2015.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