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기쁨거리(2011)

아담한 욕심

온달 (Full Moon) 2015. 4. 15. 09:20

아담한 욕심 

 

석현수 

 

 

 

 

어린 것의 손톱을 깎아주는 딸아이를 보면 어항 속의 물고기를 보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엄마와 아이의 손 사이에는 무언의 대화가 수없이 오간다. 추측건대 대부분이 사랑이리라. 손자는 스르르 잠에 빠지고 무릎을 괴고 내려다보는 엄마의 얼굴도 점점 아이를 닮아가고 있다.

 

저런 곳에도 욕심이 있을까 싶지만,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욕심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단지 저 짧고 보드라운 손가락같이 귀여운 욕심일 것이기에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아이의 경우는 내가 잠들어도 엄마가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거나, 약속했던 딸기 우유를 달라거나, 뽀로로 비디오 한 편을 보고 싶다는 정도가 아니겠는가? 엄마는 개구쟁이라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는 욕심 정도 일테고.

 

천사의 마음도 자라 가면서 세상일에 물들어 갈 것이다. 아이는 지상의 것을 배워나갈 것이며, '나'로 한정되었던 욕심은 남들과의 관계까지 번져가며 어느덧 욕망이란 이름으로 변질하여 갈 것이다.

 

어떤 청년이 산속에 살겠노라며 절을 찾아왔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법정 스님의 말씀을 인용 해가며 자기 스스로를 마음을 모두 비우고 산에서 살기로 결심한 사람이라고 소개했었다. 청년은 오히려 이 말 때문에 수도자의 길을 허락받지 못했다. 젊은 나이에 욕심을 비운 사람이라면 분명히 자포자기自暴自棄한 사람일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나, 듣는 이에게는 여운을 길게 남긴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수도자의 길일지라도 이 길을 막 들어서는 사람은 수도자가 되려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조차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라면 수도생활인들 가능하겠는가?

 

보통 때는 손톱이 길면 위생에 좋지 않으니 짧게 잘라주어야 하나 클래식 기타를 치는 사람은 손톱이 짧으면 연주가 되지 않기에 반드시 손톱이 길어야 한다. 고혈압이 있으면 콜레스트롤이 있는 음식을 피해야 하지만 이것은 인체의 성장을 돕고 생식을 도모하는 꼭 필요한 것이기에 먹어주어야 한다. 인간이 천성적으로 타고난 것에서는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다. 필요한 것만 만들기도 바빴을 조물주가 일부러 악을 만드는 수고까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톱이나 욕심이 그러한 것이어서 사람이 타고난 소중한 것들이니 뿌리를 뽑아 내던지기보다는 오히려 적당히 다듬어 주어야 할 것들이 아닌가 싶다.

 

평화스런 모습으로 보아 아기의 손톱은 물론 엄마의 욕심도 잘 다듬었을 것 같다. 개구쟁이라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게 해 달라는 것은 높이 되라거나 부자 되라는 것보다는 훨씬 아담한 욕심이리라.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건강하게 자란다.’는 그것조차도 부모의 대단한 노력이 없으면 이루어 내기 어려울 큰 욕심이라는 생각에 이르고 보니 과연 욕심 비우기란 어디까지가 아담한 것인지 난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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