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기쁨거리(2011)

앉으시오

온달 (Full Moon) 2015. 4. 15. 09:25

앉으시오  

 

석 현 수  

 

 

대책 없는 것이 남자들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고 아무리 꾀어보아도 이들이 머문 자리는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 밖에서 새는 바가지는 집에 들여다 놓아도 샌다. 아무렇게나 싸고, 부담 없이 털고, 내몰라 라 흘려대니 하루만 청소를 걸러도 집안이 온통 공중변소다.  

 

앉으시오,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일 보도록 하시오. 이것도 익숙해지면 주저주저할 일이 되지 않소이다. 한발 더 다가서라는 주문도, 정 조준해 달라는 양해의 말씀이 없어도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된답니다.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같은 자세이니 편안히 앉아주세요. 그리고 눈을 감고 안단테andante, 안단테로 배설의 희열을 즐기세요. *외팔보에 매 달린 최후의 한 방울이 변기 속으로 자유낙하 되고 나면 비로소 당신의 고추잠자리도, 화장실 바닥도, 그대의 지겨운 거시기의 눈물로부터 해방될 수 있겠지요. 

 

밖에서 지킬 공중도덕이 있는가 하면 집에서도 지켜야 예절도 있는 법이거늘 나서거나 들거나 간에 남자의 눈물은 멈춰주어야 합니다. 걸레는 절대 들지 않는 게으른 선비들이여, 집에서 눈치코치를 먹지 않고 살려면 눈물도 콧물도 흔적이 없어야 합니다. 양변기 뚜껑을 열어 재치고 당당히 선 용감한 남자여, 양미간을 찌푸리고 바닥을 닦아내야 하는 누군가의 얼굴을 먼저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선택해야 합니다. 청소로 가사에 참여해 줄 것인가? 아니면 앉아서 ‘쉬’ 하기가 쉬울 것인가?  

 

아름답지 못한 것이 남자들이다. 이들이 머물다간 자리 역시 아름답지 아니하다. 그깟 총 한 자루가 무엇 그리 대단하여 내실에서까지 꺼내 들고 도발적인 사격자세를 취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남자들이여,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집에서만큼은 아무쪼록 낮은 자세로만 군림해 주소서.  

 

*외팔보(cantilever): 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아니한 상태로 있는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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