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석현수
나이 들면서 친지들로부터 이름 짓기를 자주 부탁을 받는다. 내가 지어준 이름에는 어진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어진이’도 있고, 또 복이 많으라고 ‘다복이’라 해 준 이름도 있다. 조금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일곱 개 복으로 한정된 ‘칠복이’보다야 훨씬 양이 많은 ‘다복이’가 낫지 않겠는가. 훗날 충분히 이름값 하라고 나의 염원을 아이들 이름 속에 담아 주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값어치가 있다. 하나는 꼴값이요 다른 하나는 이름값이다. 꼴값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써져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에게 원망을 담아 내뱉는 말이다. '꼴값도 못하는 사람'이라면 서운한 질타가 되며, 설령 '꼴값 한다.'라는 긍정문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얼마나 큰 조롱일까. 반면 이름값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서 성공한 사람을 보고 이름값을 했다고 한다. 자기 주가를 높이기 위해 나 보다 나은 사람들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본인의 이름값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이름값은 명예의 다른 이름이어서 그 값어치를 모두 탐을 낸다.
나는 이름값이나 제대로 하고 사는지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미안하게도 컴퓨터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내 꼴〔畫像〕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값이 전혀 매겨져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거늘, 아직 값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보니 사후에야 호랑이 가죽처럼 질긴 이름을 남기려나, 아니면 숫제 값을 쳐줄 잡이가 되지 못해 장외에만 머물고 있는 것일까?
내 이름으로 살아가는 동명이인同名異人들은 많았다. 사이버 공간을 차지하는 기사는 수천 건에 달했으며 블로그, 카페, 웹 문서, 신문, 잡지 기사 등에서 뜨고 지는 별처럼 반복해서 오르락내리락해 가며 열심히 꼬리표를 남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같은 이름으로, 동시대에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니 대한민국에 여럿의 옹고집들이 출몰한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굳이 성공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튼 그 중에는 박사도 있고, 교수도 있고, 잘나가는 성악가도 있었다. 어떤 분은 동명이인이 아니라 동명여인同名女人도 있어 내 이름에서 여성스런 분위기도 나올 수 있구나 싶었다.
나의 이름값은 정말 없을까? 인터넷에 영양가 있는 기삿거리 하나 없이 인생 후반전을 맞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지 못해서, 대단한 운동선수가 되지 못해서, 큰 학자가, 판검사가, 배우가 되지 못해서…일까? 이름값이 없음은 단지 계량 방법에서 차이가 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나는 이름값을 다르게 생각해 보았다. 이름값이란 자기가 해야 할 역할과 도리가 아닌가 싶다. 나의 이름값은 예를 들면 부모님께는 자식으로서, 자녀들에게는 아버지로서, 아내에겐 남편으로, 직장생활에서는 부하로, 또 상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는 종합 성적으로 이름값을 매겨 본다. 거기다가 ‘나이 값’도 보태 보면 어떨까 싶다.
‘어진이’는 어질어지려 남달리 노력하는 데서 그 이름값을 하게 되어 있고 ‘다복이’는 세상 복 다 받을 사람처럼 노력하는 데서 그 이름을 빛낼 것이다.
명실상부名實相符란 말은 이름과 실상이 서로 꼭 맞는다는 뜻이다. 사람이 귀하듯 모든 이름은 소중하다. 세상에 값없을 이름이란 없다. 언젠가는 ‘이름값’을 달아내는 정밀한 계측기가 나올 수 있다면 그때 값을 매겨도 늦지 않으리라. 다행히 동명이인들이 벌써부터 향기를 뿜어내고 있으니 여유롭게 기다려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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