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면서
딸네 집 동네 이름이 ‘기쁨의 거리’이다. 딸의 일상은 전쟁 아닌 날이 없어서 두 어린것들에게 혼쭐이 나고 있다. 지금은 동네가 제 이름값을 못 하는지 떼 고생 중이다. 살기 좋아 ‘기쁨의 거리’가 아니라 살기 좋은 곳이 되라고 이름을 그렇게 붙였던 것 같다.
많은 글들이 전쟁터(?)에서 쓰였다. 다행히 글 대부분에는 화약 냄새도 나지 않고 총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언젠가 어린것들이 자라고 나면 잃어버린 세월만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질 것들이 많다. 아이 크는 것도 잠깐이고 나무 크는 것도 잠깐이다. 나는 어린 묘목이 언제 커서 대지를 덮을까를 염려하지 않는다.
또한 기쁨의 거리는 우리가 꿈꾸는 거리다. 이것은 마음속의 거리여서 부지런히 자기 최면을 걸어주지 않으면 쉽게 모양을 내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멀리서 보면 다섯으로도, 여섯으로도 보이는 안개 낀 날의 오륙도(五六島) 같지 않을까 싶다.
평화운동가 틱낫한은 마음은 수천 개의 채널이 있는 텔레비전과 같아서 우리가 선택하는 채널대로 나타난다고 한다. 내가 일부러라도 맞춘 주파수의 대역(帶域)은 기쁨이어서 기쁨의 눈으로 세상을 비춰 보려 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 심지어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까지 사랑해야 한다. 아침잠을 깨우는 성가신 것들을 즐거움으로 바꾸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나는 기쁨의 거리로 나가서 아침을 맞으며 기쁜 노래를 부른다. 기뻐서 노래하기보다는 기뻐지기 위한 노력이다.
베토벤은 그의 교향곡 「합창 Choral Symphony」에서 최고조 환희의 노래를 들려주지만, 정작 그의 귀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생활비도 없는 비참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고 한다. “오! 친구들이여, 곡조를 바꾸어 더욱 즐거운 더욱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는가?” “Oh friends, not these tones! Let us raise our voices in more pleasing and more joyful sound!” 그는 기뻐지기 위해 환희의 노래를 작곡했던 것이다.
그동안 가르침을 주시고 글 평을 해주신 장호병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부족한 글들을 엮어 주신 북랜드 관계자 분들께도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기쁨의 거리에서 부르는 노래가 혼자만의 위로가 아닌, 모든 읽는 이들의 즐거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이 책을 펴낸다.
2011. 6
석현수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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