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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악의 기술

온달 (Full Moon) 2015. 4. 16. 14:35

틈, 악의 기술 

 

 

석현수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한 것인데, 외물外物에 유혹되어 악이 생긴다. 이는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이다. 나는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보다는 맹자의 성선설 쪽을 더 신뢰해 왔다. 살아남기 위해 동원되는 못된 짓들을 어찌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알고 있었으랴. 후천적으로 터득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병서는 악을 가르치는 책이다. 이기기 위한 수단 방법을 총망라해 놓고 있다. 손자병법이 좋은 예다. 착하기만 해서는 전쟁에 이길 수 없을 것이니 병졸에서부터 장수에 이르기까지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을 모두 가르쳐준다. 손자병법 모공편謀攻編에 있는 상병벌모上兵伐謀는 상책의 용병은 적을 모사謀事로써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다. 군대를 동원하여 싸움질하는 것을 가장 낮은 단계의 술수로 보았다. (上兵伐謀, 其次伐交, 其次伐兵, 其下攻城). 여기서 ‘벌모’란 위협하기도 하고 이간질하고, 때로는 유혹하는 등의 모든 방법을 뜻한다.

송나라의 양공이란 임금은 인자한 임금 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러나 후세에는 아무도 그를 어질다 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약한 틈이 보일 때 먼저 공격을 해야 한다는 공손소의 말을 듣지 않았다. 초나라의 장수 투발이 강을 다 건너고 전열을 다듬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가 싸움을 시작했다. 결국 송나라는 초나라에 패하였다. 공연히 어진 척하다가 낭패를 본 왕이다. 송양지인宋襄之仁 이란 어리석음의 대명사처럼 되어있다.

어질다고 소문난 유방까지도 숙적 항우와의 대결 과정에서 이간질이란 계략을 썼다. 유방의 부하 진평은 황금으로 첩자를 매수하고 헛소문을 퍼뜨려 항우가 자신의 책사인 범증을 의심하게 한다. 결국, 범증은 항우를 등지게 되고 범증 없는 항우는 서서히 열세에 몰리게 된다. 조그만 틈이 단단한 둑을 무너뜨리듯, 이간질로써 상대의 결속을 허물어 버렸다.

지금은 기업 경영에서도 ‘협상의 기술’이나 ‘마케팅 전략’에 손자병법을 가르치고 있어 삶이 곧 전쟁터다. 틈을 이용하라는 ‘틈새시장’이란 용어는 이미 친숙해진 용어다. 눈에 불을 켜고 이 틈 저 틈을 살피는 약삭빠른 사람이 되어야만 식솔들 밥은 굶기지 않는다. 틈을 만들어 파고들라는 말은 병법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위와 아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동쪽 사람과 서쪽 사람, 심지어 위정자와 국민 사이에 틈을 비집고 골을 파서 위태롭게 흔들어 댄다. 특히나 선거 때가 되면 무차별 폭로전, 인신공격, 유언비어, 비판과 비난이 난무한다. 생사람 잡기를 식은 죽 먹듯 하고 있다.

심지어 운동경기에서도 병서의 기술을 적용한다. 좌우 동수이면 중앙이 허다. 서로 상대에게 미루는 심리를 이용해서 파트너 끼리를 이간질하는 방법이다. 테니스나 탁구에서 복식경기를 할 때 중앙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사이를 뜨게 만드는 이간질은 인간의 동물적 근성이다. 주고받는 대화의 태반이 다른 이들에 대한 험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지간한 돈독한 신심의 신자라도 시정잡배와의 구분이 모호할 지경이다. 화합의 말을 즐겨 사용하면 그러한 인연으로 천상에 태어난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무색해진다. 아마도 사람 사이에 틈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천국에서나 가능하다는 말일까? 인간은 원래가 악한 존재였던 것이 아니었는지…….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순자의 성악설이 더 맞을 것 같기도 하고.

헤르만 헤세는 “안개에 둘러싸인 나무들은 숲 속에서도 고독하다”고 노래했다. 사람들은 서로 연막을 치고 산다. 시인은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느껴야 하는 우리를 에둘러서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드는 안개는 틈이며 간격이며 이간질이다. 기요틴Guillotin은 사형을 쉽게 집행하기 위하여 단두대를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잘랐다. 그러나 기요틴 자신도 결국 그 기계에 의하여 목이 잘려야 했다. 악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즐기는 동안 어느 틈에 그 기술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