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꽃보다개(2013)

겉치레 속치레

온달 (Full Moon) 2015. 4. 17. 09:11

겉치레 속치레 

 

석현수 

 

 

얼굴을 안경으로 가렸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달라 보일 수야 있겠지만, 홍길동은 안경을 써도 어디까지나 홍길동이다. 날씨가 춥다고 귀마개를 하고 길을 나선다고 해서 사람이 바뀔 수 있을까? 얼굴은 간판이어서 성형이 아니고서는 변경을 하지 않는다. 수시로 표정을 바꾸고 살아야 한다면 그는 연극 속 극중 인물을 대행한 배우일 것이다.  

 

이름도 얼굴 같은 것이어서 여간해서는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 자주 바꾸는 것도 집안 내력이어서 아버지 아들 대까지 이름 바꾸기를 수없이 하는 이도 있다. 큰 인물 되고 큰돈 벌기 위해서라지만 이름 바꿔서 될 일이 아니다. 본인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남에게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준다. 우선 학교 동창들조차도 헷갈려 이름 부르기를 주저한다. 발음 때문에 놀림감이 되거나 할 경우에야 어쩔 수 없겠지만, 족보까지 고치려면 재판절차도 감수해야 한다. 

 

관공서는 이름으로 국민을 힘들게 한다. 이름 자주 바꾸는 부서는 몇 년이 지나도록 뭣 하는 곳인지 모른다. 처음에는 외우려 들지만, 나중에는 스르르 관심을 꺼버린다. 그중 하나가 중앙 행정부서의 이름이다. 심하게는 내각이 발표되어도 그곳이 무엇 하는 곳인지도 모를 때가 많다. 어릴 적 ‘사회생활’이란 국정교과서에 실었던 몇 실 몇 부처를 외우며 성장기와 청년기를 지낸 노인 세대는 새삼스럽게 세상일에 눈뜨려 노력하지 아니하는 한 따라잡기에 큰 불편을 겪어야 한다. 막 시작하는 다문화 가정처럼 한국이 낯설고 서투르다. 

 

4·19 때 내무부 장관이면 천하가 쩌렁쩌렁할 정도로 생각했다. 삼척동자도 알았던 곳이 아니던가. 내무부가 두 번 이름을 바꿔다는 통에 ‘내무부’란 옛 이름도, 새롭게 등장한 현대식 이름도 잊어버렸다. 말을 빌리면 전 행정자치부를 거쳐 지금의 안전행정부로 바뀌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때의 1 특별시 14도는 광역시 몇 개가 늘어났을 뿐이고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도 변함이 없건만 어찌하여 이를 다스릴 행정관서 이름은 바꾸고 또 바꾸어야 했을까.  

 

옛날 이름은 법무부, 국방부 정도가 남아 있을까? 부서마다 구름처럼 일고 또 흩어지는 기능들을 더하고 빼느라 긴 이름들을 달고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우체국을 관장하는 부서가 어느 장관 밑인지도 모르고 산다. 설령 알면 뭣 하나 식이다. 다른 사람은 다 따라오는데 왜 당신만 못 따라오느냐고 핀잔을 줄 수도 있겠고, 그것도 개인 능력이라면 할 말이 없어진다. 곧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또 바뀔 것이라는 생각에 외울 엄두를 못 내는 것은 내 탓일 것이다. 그러나 관심을 두려 해도 자꾸만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어인 일일까?  

 

나는 지금 요순시대에 사는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무관심 속에 살고 있다. 태평성대를 노래하던 요나라 순나라 백성은 누가 나라의 왕인지 몰랐고 그걸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데 나라가 베푸는 큰 덕이 내게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태평한 마음에서가 아니다. 정부 부처 이름부터가 혼란스러워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다.  

 

예를 좀 더 들어보자. 문화체육관광, 농림축산식품, 산업통상자원, 국토교통 등등이 그것이다. 다행히 전 교육인적자원부가 다시 교육부로 돌아왔다니 내가 아는 부서가 하나 더 늘어나서 반갑다. 그동안 법무부, 국방부가 그나마 자기 이름을 지키고 있었다. 옛 농림부는 임업이 들어가거나 수산이 나오거나 축산이나 식품이 들어갈 때마다 옷을 다시 갈아입었다. 직능만 고쳐도 될 일을 취급하는 품목을 모두 명기하려는 백화점식 나열 방식이 미련해 보인다. 안경을 끼었다고 귀마개를 착용했다고 그때마다 안경 낀 얼굴, 귀마개 낀 얼굴이라 부르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랴. 이런 식이라면 ‘홍길동’이란 사람을 부르면 될 것을 안경과 마스크 그리고 귀마개 낀 ‘홍길동’이라고 불러야 제대로 마음이 놓이는가 보다. 

 

변화와 개혁 탓이다. 전임자와 달라 보이겠다는 욕망이 넘치고 있다. 모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겠다고 나선다. 전임자가 했던 것 들어내는 것도, 전임자가 들어냈던 것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이라도 해야 한다. 변화와 개혁만큼 매력적인 간판이 또 어디에 있을까? 누구나 이 카드를 앞세우며 이름부터 고치고 본다. 변화해야 산다느니, 개혁하지 않으면 죽는다느니 하며 가장 시끌벅적한 시절일수록 부끄러운 작태가 더 많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어떤 직함에서는 “교통사고 없는 원년”을 만들겠다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후 결과는 원년 이전보다 더 많은 사고율로 마감했다. 후진기어를 넣어 기존의 것을 어지럽혀 놓아 개악한 변화도 많았다. 몸단장도 같이 해야 하는 건데, 대부분 얼굴 나타내기에만 신경을 쓰다 속치레를 못 한 모양이다. 현수막이 사철 나부끼거나 홍보영상물이 화려한 곳일수록 겉치레가 심한 곳이다. 우리는 멋진 이름이나 간판을 보기보다는 옛 이름표라도 좋으니 허리띠 졸라매고 땀 냄새를 물씬 풍기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한동안 도서관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도서관이 ‘문화정보센터’로 이름이 바뀌고 나서부터 도서관이란 검색어가 인터넷에 없어졌다. 도서관 홈페이지를 찾을 수가 없으면 예약도 못 한다. 긴 새 이름으로 부르기가 쉬운 세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차량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화정보센터를 모두 입력해 주지 않으면 행선지를 못 알아본다. 갑자기 갈 곳을 모르고 길을 찾는 문맹자로 전락한 적이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었던 일일 것이다. 개명한 지 14년 만에 ‘도서관’이란 옛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책을 보고 빌리고 하는 곳에서 문화강좌가 열린다고 해서 굳이 ‘문화’라는 말을 집어넣으려 애쓰다 보니 멀쩡한 사람들을 10년 넘게 힘들게 만들었다.  

   

‘밀림의 성자聖者’라 불리는 슈바이처(1875~1965) 박사도 자기 꾸미기에 탁월한 연출가였다고 한다. 슈바이처가 그 바쁜 진료 중에도 수만 통의 편지를 발송했고, 그 수신자가 아인슈타인에서부터 흐루쇼프를 거쳐 존 F. 케네디에 이르기까지 다국적 권력자였다고 하니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정치적 인간’으로 그를 평하는 이도 있다. 자기 알리기는 성인에 가까운 사람도 주체 못할 욕심이었나 보다. 다음 또 다음을 약속받아야 하는 민선 단체장의 애로가 왜 없겠는가. 그러나 안경을 낄 때마다, 귀마개를 할 때마다 같은 사람을 달리 불러 줘야 하는 우리의 고통도 알아주면 좋겠다. 사람이 바뀔 때마다 해야 하는 스무고개 놀이도 이제는 진력이 났다. 너무 심하게 이름으로 장난하지 마라, 나중에는 얼굴 못 알아볼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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