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네하라 마리의 '교양노트'(마음산책 출판사)에
'사소해 보이는 것의 힘'이란 글이 있습니다.
건축가를 꿈꾸던 젊은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설계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고치고 다듬어 도면을 완성했습니다. 흡족했습니다. 목수를 찾아가 자랑스레 그 설계도를 내밀었습니다. 한참을 보던 늙은 목수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건 기쁨과 행복의 마을이 아니라 슬픔과 불행의 마을이로군." "그럴리가요?" "확실히 애써서 만든 설계도일세. 도로와 건물의 위치, 소품의 배치도 완벽해. 하지만 자네가 간과한 게 있네. 그림자일세. 건물에 그림자가 어떻게 지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군. 햇빛을 받지 못하는 마을은 어두침침한 회색 마을이 되고 마네. 사람들은 우울해지지. 젊은이, 명심하게나. 그림자를 얕봐선 안 되네. 그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닐세."
2. 어떤 사람이 중국에서 그림을 사왔습니다.
낙락장송 아래 한 고사(高士·뜻 높은 선비)가 고개를 들고 소나무를 올려다보는 그림이었습니다. 솜씨가 기막혔습니다. 안견(安堅)이 보고 말했습니다.
"고개를 들면 목덜미에 주름이 생겨야 하는데, 화가가 그것을 놓쳤다."
그 후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림이 되었습니다.
3. 신묘한 필치로 일컬어진 또 다른 그림이 있었습니다.
노인이 손주를 안고 밥을 먹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성종께서 보시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긴 하다만, 아이에게 밥을 떠먹일 때는 저도 몰래 자기 입이 벌어지는 법인데, 노인은 입을 꽉 다물고 있으니 화법을 크게 잃었다."
그 후로는 버린 그림이 되었습니다.
유몽인(柳夢寅·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렇게 부연하고 있습니다.
"그림이나 문장도 다를 게 없다. 한번 본의를 잃으면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워도 식자가 취하지 않는다. 안목 갖춘 자라야 이를 능히 알 수가 있다(具眼者能知之)." 의미는 늘 사소한 데 숨어 있습니다. 기교는 손의 일이나, 여기에 마음이 실리지 않으면 버린 물건이 되고 맙니다. 가짜일수록 그럴싸합니다. 진짜는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는 법이 없습니다. 덤덤하고 질박합니다. 꽉 다문 입에 손주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픈 할아버지의 마음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목 뒤의 주름을 놓치는 바람에 소나무의 맑은 기상을 우러르는 선비의 마음이 흩어졌습니다. "젊은이! 명심하게. 사소해 보이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게. 그림자를 얕봐선 안 되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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