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이광수는 에세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논하고 있다. 이광수의 에세이에 대한 이해는 영미문학 지식에 바탕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에세이의 '이지적'성격에 대한 강조가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한다. 이광수가 생각한 이상적 에세이는 주관적 내면의 표현을 지향하기 보다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성을 주장하고, 유희적이라기 보다는 규범적인 성격을 갖고, 상상적이기 보다는 이성적이고, 모자이크적 형태보다는 수미일관한 논리 전개를 선호하며, 대화적이기 보다는 일방적이고 교훈적인 경구의 형식을 가질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지적 성격이 에세이를 ‘평론과 비슷한’ 형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다 같이 인생의 관찰과 분석에 예리하고, 다같이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예민하더라도 이를 운율에 맞게 표햔하거나 상상력에 소訴 하지 아니하고 다소 理知的요소를 많이 넣어 평론 비슷이 쓰기를 좋아하는 이는 논문 작가가 될 것이외다. (논문이라면 말이 적당치 아니합니다마는 나는 영어로 Essay 라는 것을 지칭합니다.) 칼라일, 에머슨 같은이는 영문학에 유명한 논문작자 Essayist 외다. 한문에도 이소경離騷經이나 적벽부赤壁賦나 등왕각서藤王閣序 같은 것은 다 여기 속할 것이니 이것을 소품문小品文이라 하면 긴 글도 있으니 적당치 아니하고, 부賦라하면 다소의 운율이 필요하니 그도 적당치 아니하고 논문이라 하면 신문·잡지의 정치적 논문도 논문, 모든 과학적 눈문도 논문인 즉 논문이라 함도 적당하지 아니하다. 가령 에머슨의 엣세를 예로 들면 역사론, 연애론, 교우론, 이 모양으로 동양말로 번역할 때에 論子 달릴 것이 많으니 이 의미로 논문이라 할 것이외다. 아마 문학적 논문이라 하면 좀 더 적당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문학에 뜻을 두는 이에게」(1922) 『전집』16, 53면
2018. 7. 28
온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