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人情事情(2019)

젊은 문인이 아쉽다

온달 (Full Moon) 2018. 11. 2. 06:47




젊은 문인이 아쉽다

 

 한국문인협회 주최 제37차 전국 대표자 대회가 대구에서 열렸다,

전국에 있는문인협회 산하각 지회의 책임자들이한곳에모인성대

한 자리였다. 이런 회의가 문인들 간의 상호 교류를 넓히고 대화와

단합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뜻을 높이 살 일이라는 치사와

함께 행사장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치사致詞는 거창했지만 자만하기엔 부족한 2%의 갈증이 있었다.

고민거리란 문단의 노령화다. 앞도 뒤도 좌도우도 발표자도 청자도

모두 하얀 머리들뿐이었다. 무슨 경로잔치 마당 같다는 씁쓸함이 있

었다. 한두 명이라도 젊은이를 볼 수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것을. 65

세 이하는 관람 불가의 영화관 분위기가 이러할까

진달래의 김소월도, 별 헤는 밤의 윤동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

는가의 이상화 시인도 모두 약관의 젊은이들이었음은 주지의 사실

이다. 우리는 지금 젊은이들을 깜빡 잊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스럽

다. 더는 불후의 명작이 젊은 작가에서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

이 아닐는지. 문인들 인구가 폭발하다 보니 문인 정치는 필요하다. 145


 어느모임이든 조직이있어야하고관리가되어야한다는점에서사

회 경험과 연륜이 있는 인사들이 꼭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천편

일률적으로 모두 나이가 가득할 이유란 무엇이람. 당연히 더불어 있

어야 할 젊은 회원층이 없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여흥 프로에 등장한 플루트 연주자나 알토 색소폰으로 관객을 매

료한젊은이나청아한목소리로닐리리를부른한복을입고나온 이

도 모두 젊은이였다. 그런데 이를 즐기고 있는 방청객은 한결같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처럼 나이 때

문에 문학에서 차별을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당연하나, 이건

차별을 넘어 문단을 싹쓸이 점령해버렸다. 음악도 무용도 연주도 문

학처럼 예술의 큰 축이다. 그쪽은 젊은이가 나서야 더 잘되고 문학

은 지긋한 연세로 좌정坐定해주어야 한다면 이 어찌 우스운 설명이

아니겠는가

 인생 2모작 하는 연로한 문학도들이 오히려 젊은이들의 성장에

그늘을 지우고 있지나 않은지를 걱정해보아야 한다. 글재주에도 낭

중지추囊中之錐의 젊은 인재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문학은 늘 교훈적

이고 근엄해야 한다는 설명으로도 부족하다. 20대의김소월, 윤동주,

이상화 시인이 이른 나이에 당대의 문단의 주를 이루었고 지금까지

도 불후의 대작들로애창되는 시를남겨애송되고있는점을주목할

필요가 있다. 꼭 특정 나이에 한정할 수 없는 것이 예술이고 문학이

다. 세 시인의 작품과 발표연대를 살펴보자. 그들은 모두 약관弱冠

젊은 나이였다.


김소월(1902) 「진달래꽃」1922년 21세

윤동주((1917) 「2별 헤는 밤」1941년 24세  146


 이상화(19010) ≪개벽≫ 1926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25세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

람의 글이다.” 피천득의 「수필」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것을 보고 수

필가의 자질을 재단하는 것은 얼마나 편협한 이해일까. 수필은 관조

의 문학이라고 정의한 분도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사회적인 식견

을 갖춘중년이후에라야쓸수 있는중후한글이라했다. 그러나에

세이의 원조인 몽테뉴의 LES ESSAIS의 1,500쪽 분량의 전문을 살

펴도 나이에 제한을 두라는 구절은 어디에도 없다. 너무 젊어서 할

수 없는 문학이 있다는 것이 생뚱맞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는 미국의 저명한 저술가 Robert Fulghum의 말이다. 그렇다면 수필은 서른여섯의 중년이 아닌 유치원 졸업생부

터라도좋겠네? 지혜란대학원이라는 최고봉에있는것도아니고 연

세에 있는 것도 아니다. 유치원의 소꿉놀이 속에 있었다는 것이 그

의 주장이다.


 한 해에 문인으로 등단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그중에 20~

30대의 젊은 작가는 몇 명이나 되는가? 늘어나는 문예지의 수는 얼

마나 되는가? 그 수많은 글 중에 젊은이에게 할애된 글은 과연 몇

줄이나 되는가? 국민 소득이 높아지고 삶의 질이 향상되어 우리는

한국의 문예 부흥 시기를 맞았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적어도 수

와 양에서는 그런 찬사를 들을 만할 것이다. 그러나 질 면에서는 황

량하기 그지없다. 왜냐하면 문예의 싹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장

래가 어둡다. 싹은 있으나 나무에 가리어 빛을 받을 수 없어 더 자

랄 수가 없다. 147


 젊은이들문예 행사는생각보다 경쟁이 치열한곳이다. 작품의우

수성으로 보나 응모자의 숫자로 보나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 이들

에게도 제도적으로 문단 진출의 기회를 부상으로 내린다면 젊은 문

학도의 저변확대를 기대해볼 만하다. 예를 들면 학교마다 실시되는

백일장에서 장원에 등극하는 학생들이라든가특히 젊은이의 도량인

군인이나, 경찰에서 시행하는 병영 문예행사에서 우수상을 받는 젊

은이들도 그러할 것이다. 마침 이모작으로도 넘쳐날 만큼 문학인의

저변확대가 되었다고 양적인 팽창에 크게 기뻐하는 참이니 적은 숫

자의 젊은 청년 문사들을 영입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누구도 샛

문이니 끼어들기니 하면서 힐난하지 않을 것이다.

 기성세대만 점령하고 있는 영변 약산에도 봄은 올 것인가? 심심

산천에붙은 불은이대로어른들만의금잔디가 되어도좋은가? 겨울

이 지나고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 젊은이의 재

능이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한 날이 올 날이 있을지

를 스스로 되물어볼 때가 되었다.

(2017. 12. 17.)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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